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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Dec 20. 2021

이제 22살의 애정결핍?

비정상

"안기는 걸 좋아하는데 애정결핍일까요?"

이제 22살이 되는 한 여성의 의문이다.

동생이 너무 아기 같다고 하고 사연자도 인정한다.

애정결핍이라면 고치고 싶다.

(12월 20일 참나원 팟캐스트 방송)



고등학생 때 유학을 떠났다.

지금은 집에 왔고 내년에 다시 돌아간다.

엄마한테 안기는 것을 좋아하고 일어나자마자 토닥토닥해달라고 조른다.

동생의 충고를 듣고 노력하면 나아지는 듯하지만 곧 관심과 사람의 온도가 그립다.


사연자는 스스로 자신이 애정결핍이 아닌가 의심한다.

애정결핍이라면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알고 싶어 사연을 올렸다.

자신의 증상을 의심하면서 다른 사람들한테 도움을 청했다.

이런 행위도 애정결핍에 따른 의존성으로 보아야 할까.


애정결핍은 확정할 수 있는 사실의 영역이 아니다.

관점의 문제다.

스킨십을 좋아한다고 해서 관계중독이나 애정결핍으로 몰아갈 수는 없다.

그냥 성향일 수도 있다.


진단명을 붙인다고 해서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진단명에 갇히면서 치우친 사고를 할 위험도 있다.

정상인지 비정상인지 가리는 기준 또한 단순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당사자의 느낌이다.


자신이 불편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한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문제가 없다.

사연자가 지금 누구를 괴롭히고 있을까.

관심과 사람의 온도가 그리워 스킨십을 좋아하는 것이 비정상일까.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마음으로 볼 수도 있다.


남달리 머리가 좋으면 비정상인가.

남달리 정이 깊으면 비정상인가.

굳이 남들과 같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문제라고 보는 것과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것은 아주 다르다.


굳이 애정결핍이라고 연결 지어 생각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상황과 맥락에 알맞은 행동을 하면 충분하다.

스킨십을 좋아하는 것이 애정결핍이라면 스킨십을 거부하는 것은 애정과다인가?

굳이 살벌한 진단명과 묶을 필요는 없다.



지나쳐도 모자라도 문제가 된다.

지나치다 싶으면 그치면 된다.

모자라다 싶으면 채우면 된다.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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