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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Feb 03. 2019

삼매와 무심의 경지

물아일여

'독서 삼매경'이란 말이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에 몰입해있는 상태를 말하는데, 아마도 교과서에서 처음 본 듯싶다.

웬일인지 삼매라는 말이 가슴으로 훅 들어왔었다.

어릴 때부터 어떤 말은 나도 모르게 가슴에 새겨지면서 내 속 깊은 무엇인가를 깨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삼매라는 말도 그 가운데 하나였으며, 그 뜻을 알고 난 다음에는 아주 좋아하는 말이 되었다.

삼매에 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삼매란 마음이 최고로 기능하는 상태이다.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상태를 잡념이라고 한다면 한 가지 생각으로 집중되어 있는 것이 일념이 된다.

잡념에 빠져 있는 마음을 산란심(散亂心)이라 하고 일념의 상태를 일심(一心)이라 한다.

보통 사람이 일상에서 평소에 가지는 마음은 산란심이다.

산란심은 마치 햇빛에 퍼져서 사물에 널리 비치는 상태와 같다.

그런데 햇빛을 돋보기로 모아서 한 점에 집중시키면 뜨거운 열이 발생한다.

이렇게 한 점에 모은 것이 일심이며 일심의 상태에서는 집중력으로 어려운 문제도 풀어갈 수 있다.


아주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을 때 마음이 저절로 그 일에 집중되어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어지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크게 걱정되는 일이 있으면 그 걱정에 마음이 집중되어서 먹고 자는 일상에도 지장을 받곤 한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마음이 하나로 모인 일심의 상태는 평소와 다른 에너지를 발휘한다.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라고 '정신을 하나로 모으면 어떤 일을 이루지 못하겠는가'라고 한다.

일심으로 이루지 못할 일은 없다는 뜻인데, 마음을 집중하는 효능을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일심은 마음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가 아니다.

일심의 상태는 마음 에너지가 집중되어 힘을 내지만, 그만큼 에너지가 소모되어서 쉽게 피로해질 수 있다.

힘을 내면서도 꾸준히 유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마음이 일심을 넘어서서 무심에 도달하면 이렇게 꿈같은 일이 현실이 된다.

무심이란 '마음이 텅 비어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마음이 텅 비어 버리면 아무런 작용도 하지 못할 것 같다.

그런데 놀랍게도 마음이 텅 비어버리면 기적이 일어난다.

마음이 기능하는 모습을 잘 살펴보면 항상 대상에 따라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음이 일어나려면 자극이 되는 대상이 있어야 한다.

마음을 일으키는 주체를 나(아, 我)라고 하면 마음의 대상을 물(物)이라고 한다.

나와 대상 사이에는 경계가 있게 마련인데, 무심의 경지에서는 이 경계가 사라진다.

이것을 일러 물아일여(物我一如)라 한다.


무심이 되지 않고서는 대상과 내가 하나가 될 수 없다.

아무리 일심으로 집중되어도 나와 대상 사이에는 경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 경계가 허물어지고 대상과 내가 하나가 되는 물아일여의 상태에서 마음이 작용하는 것을 일러 삼매라고 한다.

삼매에 빠진다는 것은 마음이 무심의 경지에 이른다는 것이며, 이때 마음은 온갖 경계를 넘어서서 무한한 효능을 보인다.



삼매는 도달하기 힘든 높은 경지가 아니다.

대상과 나를 분리시키지 않고 대상을 품에 안아버리면 바로 삼매의 상태가 된다.

삼매의 상태에서는 평소의 한계가 사라진다.

일과 휴식이 분리되지 않기에 아무리 일을 해도 지치지 않아 따로 휴식이 필요 없다.

지치지 않고 필요한 일을 지속하려면 삼매에 들 수 있어야 한다.

그릇에 담을 수 있는 양은 한계가 있지만 허공이 품을 수 있는 양은 무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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