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차림
고통을 떠나 최고의 즐거움을 맛보고 싶은 욕구는 자연스럽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넘어선 즐거움을 맛보고자 다양한 시도를 해 왔다.
어떤 사람들은 감각을 직접 만족시키는 방식으로 즐거움을 구했다.
다른 어떤 사람들은 고행을 통해서 정신의 즐거움을 찾는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은 내면을 깊이 탐구하는 방식으로 고통에서 벗어날 길을 찾았다.
그들 모두는 나름대로 즐거움을 맛보았으나 어느 방식도 완벽할 수는 없었다.
감각을 만족시키는 방식을 쾌락주의라고 한다.
이들은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즐거움을 얻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맛있는 것을 먹고 아름다운 소리를 듣고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려 한다.
오감이 만족되는 즐거움은 바로 느낄 수 있고 생생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감각을 만족시키기 위해 물질을 쫓기도 한다.
그런데 이 방식에는 몇 가지 한계가 있다.
우선 감각을 만족시킬 수 있으려면 감각을 만족시킬만한 대상물을 확보해야 하는데 만만찮은 재화가 든다.
그런데 현실에서 재화는 한정되어 있다.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범죄에 빠져드는 사람들한테서 쾌락주의의 한계를 뚜렷하게 볼 수 있겠다.
쾌락주의의 단점은 또 있다.
감각을 만족시키려면 자극의 강도가 점점 더 강해져야 한다.
이전보다 더 강한 자극이 주어지지 않으면 감각은 무디어진다.
그래서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찾다가 마약을 찾기도 한다.
짜릿하고 강력한 자극을 찾는 와중에 몸과 마음은 황폐해지기 마련이다.
고행을 통해서 정신의 즐거움을 찾는 방식은 어떨까?
고행 주의의 전통은 알게 모르게 우리 일상에 깊이 뿌리 박혀 있기도 하다.
"어떻게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 있니? 하기 싫은 것도 어쩔 수 없이 참으면서 할 줄 알아야지."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
"고진감래 흥진비래라, 고통이 다하면 즐거움이 오고 신나는 일이 다하면 슬픔이 온다."
이렇듯 즐거움을 얻기 위해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퍼져 있다.
극단으로 고행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일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행위를 하기도 한다.
그들은 일부러 극심한 고행을 감행한다.
평생 앉거나 눕지 않고 서 있기만 하기도 하고, 가시덤불에 몸을 굴리기도 하며, 평생 말을 하지 않고 개처럼 짖으며 생활하기도 한다.
이렇게 몸을 학대하면 내생에 고행에 걸맞은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고 믿기에 더 심한 고통을 찾기도 한다.
실제로 고행을 하는 순간 정신이 아주 또렷하고 맑아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이 느낌을 얻고자 고행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고행 주의도 쾌락주의와 같은 한계를 갖고 있다.
고통에 익숙해지면서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주지 않으면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 무디어진다는 것이다.
더 강한 자극을 찾는 와중에 역시 몸과 마음은 너덜너덜해지고 만다.
더 중요한 사실은 즐거움을 얻기 위해 고통을 찾는 자체가 이미 모순이라는 점이다.
즐거움을 얻기 위해 고통을 느낀다면 결국 제자리에서 맴맴 도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내면을 깊이 탐구하는 방식으로 즐거움을 구한 사람들은 어찌 되었을까?
그들은 정신세계를 깊이 파고들어서 '선정(禪定)'이란 방법을 개발해서 인간이 맛볼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을 찾아내었다.
그리고 그 경지에 '해탈', '열반'이라는 이름도 붙였다.
그런데 문제는 있었다.
아무나 쉽게 이 경지에 도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정신으로 도달할 수 있는 지극한 경지를 손쉽게 맛보고자 마약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들은 현실 문제에 관심을 끊고 오로지 정신의 즐거움만을 쫓아서 마리화나 같은 환각제를 사용했다.
그 결과 어렵지 않게 지극한 즐거움을 맛보았으나 결말은 처참했다.
노력하지 않고 쉽게 도달했던 지극한 즐거움의 대가는 '중독'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의문이 생긴다.
깊은 선정에 들어가서 삼매를 얻는 것과 환각제를 사용해서 지극한 즐거움을 맛보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선정 삼매와 환각의 차이는 한마디로 꿈과 현실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환각에 빠져드는 것은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삼매에 드는 것은 이와 반대로 자신을 온전히 만나는 것이다.
온전한 자기 체험과 완전히 자기 상실이 같을 수는 없다.
현실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체험이라는 점은 같지만, 삼매는 괴로움을 직면해서 초월하는 행위이고 환각은 도망가는 행위이다.
결국 '알아차림'이 있느냐 없느냐가 둘을 구분하는 핵심 실마리이다.
현실을 직면해서 최상의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 삼매와 관련된다고 하면, 현실을 견디지 못해 관념의 세계로 도망가는 것이 중독의 세계이다.
꼭 약물을 이용해서 환각에 빠져드는 것만이 중독은 아니다.
그릇된 생각, 그릇된 행위, 그릇된 습관에 빠져들어서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도 또한 중독이다.
아무리 그럴듯한 포장을 하더라도 현실을 외면하고 구하는 즐거움들은 중독의 길로 가는 셈이다.
현실을 용기 있게 직면해가는 가운데 얻게 되는 삼매야말로 진실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걸어가야 마땅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