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설날
"까치까치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어릴 때 동네에서 자주 듣던 노래이다.
새해가 시작되는 설날!
우리는 한동안 설날을 잃어버리고 살았다.
우리 민족의 전통을 말살하려 했던 일제가 강압으로 양력설을 지내게 했고 해방 후에도 그럴듯한 핑계로 설날은 구정이라 불리며 무시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설날을 되찾았으나 이미 풍속은 너무나 변해버렸다.
아직도 일제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어서 우리 민족이 원래 가지고 있던 좋은 전통이 온전하게 회복되지 못하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송구영신(送舊迎新)이라, 옛 것을 보내고 새 것을 맞이하는 설날!
설날에는 흩어져 지내던 가족 친지들이 모여서 함께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하고 덕담을 주고받는 풍습이 있다.
어릴 때 설날을 손꼽아 기다렸던 이유는 세뱃돈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한 해 용돈을 설날에 벌(?) 수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우리 민족의 전통을 없애는 정책을 썼다.
일본은 일찍이 양력설을 지냈는데, 조선 민족의 최대 명절인 설날을 그냥 두었을까.
전통이 유지되면 전통에 담겨 있는 공동체 의식이 유지된다.
정체성이 뚜렷한 사람들은 주체성이 강하기에 마음대로 조종하기 어렵다.
그래서 일본은 설을 지내지 못하게 강압했다.
해방이 된 후에 당연히 우리네 전통이 다시 복구되어야 마땅했다.
그런데 정말 아쉽고 슬프게도 지배구조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일제에 부역했던 친일파들은 미국의 비호 아래 다시 지배세력이 되었다.
친일파들은 약삭빠르게 친미를 표방하며 권력을 잡았다.
이것이 민중의 정서와 다르게 정책이 시행되었던 근본 이유이기도 하다.
설날은 한동안 '민속의 날'로 불리다가 1989년이 되어서야 공휴일로 지정되며 설날이라는 본래 이름을 되찾았다.
1985년부터 설날 당일을 휴일로 정하기는 했지만 그냥 '민속의 날'이었다.
어릴 때부터 신정과 구정이라는 명칭이 귀에 익었다.
양력설이 새로운 정초이고, 음력설은 옛날 설이라는 뜻이다.
음력설을 설날로 여기면 시류를 알지 못하고 뒤쳐지는 것이라는 느낌을 은연중에 받았던 것이다.
대학에 들어가서 우리의 근현대사를 공부하면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전통이라 해서 다 좋은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풍습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외세가 억지로 우리네 생활 풍습을 바꾸어버린 것은 화가 났다.
왜 영어를 배워야 하는지 영어가 그렇게나 중요해졌는지 반감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토플이나 토익 같은 영어시험을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미국의 잡지를 대학원에서 신줏단지 모시듯 공부하는 모습에도 거부감이 들었다.
대학교수라는 사람들의 미국 찬양도 거슬렸다.
나는 나 자신으로 살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이나 민족에게 특정 형태의 삶을 강요할 권리는 없다.
더 끔찍한 것은 부역자들이다.
부역자들은 자신의 뿌리를 부정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앞장서서 외세에 충성을 한다.
일제시대 일본 순사의 앞잡이가 되어 독립군을 잡아들었던 부역자들을 생각하면 피가 끓는다.
이미 너무나 옛날과 달라진 생활 풍습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또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풍습이 바뀌면서 잃어버리는 아름다운 전통은 할 수 있으면 되살리고 싶다.
우리네 민중의 삶 속에 깊이 뿌리 박힌 공동체 의식과 주체성은 너무나 소중한 보물이다.
나라의 운명이 바람 앞 촛불처럼 위태로울 때마다 이 나라를 지킨 것은 지배자들이 아니라 민초들이었다.
설날을 되찾은 것도 일반 민중들이 엄혹한 탄압 속에서도 꿋꿋이 지켜왔기 때문이다.
까지 설날에 관해서 여러 가지 설이 있는 줄 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까치설날은 이렇다.
양력설을 강요하던 일제가 단발령으로 깎은 머리는 까치 머리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까치설날은 진짜 우리 설날이 아니다.
까치설날은 까치 머리를 한 일본인들의 설날인 양력설이고, 우리네 설날은 음력설이란 말이다.
구전되는 노래에는 이런 저항의 정신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설날 전날을 까치설날이라 부른다는 이야기도 알고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나는 우리네 삶을 지키려고 애썼던 조상들의 마음이 이 노래에 담겨 있다고 믿고 싶다.
풍자와 해학으로 부당함에 [ 맞서 왔던 우리의 역사를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게 믿고 싶다.
설날에는 이미 지나간 것들을 미련 없이 보내고 앞으로 다가올 삶들을 설렘으로 맞는 마음을 가진다.
고생 끝에 다시 찾은 우리네 명절에 우리 자신의 삶을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잠시라도 가져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