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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Feb 07. 2019

들숨과 날숨 사이

깨어있기

숨이 코로 들어오고 다시 코로 나간다.

들어오는 숨과 나가는 숨 사이에 무엇이 있을까?

들숨과 날숨을 가르는 지점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가!

밤과 낮을 가르는 경계는?

친구와 원수의 경계는?

과연 경계라는 것이 실제로 있기는 한 것일까?



참나를 찾는 길에는 따로 정해진 입구가 없다.

이를 일러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 한다.

산꼭대기에 오를 때 문이 따로 있는가.

어디로 가든 오르고 오르다 보면 꼭대기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문이 없다고 해서 아무 곳으로나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길이 나 있지 않은 곳으로 가면 수풀을 헤치며 힘들게 가거나 깎아지른 절벽을 만나 발길을 돌려야 할 수도 있다.


이미 뇌리에 박히고 세포에 새겨진 습관은 늘 다니는 길과 같다.

유전자에 담겨서 전승되어온 기질이나 습성은 존처럼 바꾸기 힘들다.

오죽하면 '천성은 어쩌지 못한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겠는가.

생존에 꼭 필요한 활동은 신경을 쓰지 않고도 작동되게끔 자동화되어 있다.

숨을 쉬는 활동을 보라.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아서 숨을 쉬지 않는가.


숨을 잘 관찰해 보면 숨이 몸이나 마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격한 움직임으로 몸에 산소가 많이 필요할 때 평소보다 숨은 거칠어진다.

빠른 시간에 더 많은 양의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바빠지는 것이다.

걱정이 많아서 마음이 무거울 때는 한숨을 쉰다.

몸이 알아서 환기시키려는 것이다.

이렇듯 숨은 생존에 맞게 자동화되어 있다.


숨이 들어오는 들숨은 산소를 얻기 위한 활동이다.

코를 통해 들어오는 공기에 들어있는 산소를 폐가 잡아채서 필요한 곳에 보낸다.

한편 숨이 나가는 날숨은 이산화탄소를 몸 밖으로 내보내는 활동이다.

필요한 활동을 하느라 생긴 피로물질들이 날숨에 섞여서 몸 밖으로 나간다.

들숨과 날숨을 번갈아 하면서 몸은 필요한 영양소를 얻고 불필요한 노폐물을 처리한다.


음식을 먹는 행위도 이와 같다.

음식 속에 있는 영양소를 소화기관이 뽑아내어 에너지로 쓰고 새로운 세포를 만드는데도 쓴다.

남은 음식과 버려지는 노폐물들은 똥이 되어 몸 밖으로 배설된다.

들숨과 날숨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또, 음식을 먹는 행위와 배설하는 행위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을 하거나 말을 하거나 몸을 움직이는데 에너지가 쓰인다.

이 에너지를 얻는 것이 호흡과 섭식 활동이다.

숨을 쉬지 않거나 음식을 먹지 않으면 생존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들숨과 날숨, 섭취와 배설은 모두 생존에 꼭 필요한 활동이다.

따라서 들숨과 날숨 사이에, 섭취와 배설 사이에 '삶 자체'가 있음이 분명하다.


들숨과 날숨 사이를 안다는 것은 내 삶을 알아차리는 일이 된다.

참나는 들숨과 날숨 사이에 존재한다.

그런데 그냥 자동화된 습관으로 들숨과 날숨을 하다 보니 참나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참나는 한순간도 나를 떠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의 의식은 참나를 외면하고 있다.



들숨과 날숨 사이에 관심을 두는 것은 외면하고 있던 참나를 느껴보고자 애쓰는 행위이다.

참나를 느낄 수 있는 것은 한 행위와 다른 행위가 맞닿는 경계지점이다.

그래서 경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집중하다 보면 의식이 깨어난다.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이 자동으로 실행되어 막강한 힘으로 의식을 휩쓸어갈 때, 정신을 차리고 경계에 집중하면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

이때 자발성과 창의성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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