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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Feb 12. 2019

오르고 또 오르고 놓고 또 놓고

관성의 법칙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아침에 떠오른 시조이다.

망각력이 좋아져서 웬만한 것은 다 까먹었는데, 이렇게 온전히 기억이 나는 것이 신기하다.

그런데 '오르는 것 말고 놓는 것도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아직 오지 않은 앞날을 생각할 때 막막한 심정이 되곤 한다.

예상되는 것들도 있지만 앞날이란 것이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라 막연하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것을 생각할 때 확실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보통 쓰는 전략이 지난날을 비추어 앞날을 예상하는 방식이다.

비슷한 상황에서 지난날 어떤 경험을 했는지 돌아보고 앞으로 있을 일에 대비하는 식이다.


역사를 잊지 않고 되새겨서 앞날에 대비하는 것은 오늘날을 잘 사는 유력한 전략이다.

경험만큼 생생하고 든든한 자원도 드물다.

그런데 너무나 당연하고 괜찮은 듯 한 이 전략에 커다란 결함이 있다.

세상은 늘 변하기 때문에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정확한 예상을 할 수 없기에 대응하는 방식도 단정해서 결정할 수 없는데, 자기도 모르게 지난 경험에 갇혀서 앞날을 스스로 규정해버리는 실수를 하고 만다.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으로 '나는 이런 사람이다. 이런 것은 할 수 있고 저런 것은 할 수 없다.'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갖게 된다.

그래서 새로운 상황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임하기보다는 지난 경험에 바탕을 두고 스스로 한계를 정한다.

태산을 보고 험한 산에서 고생했던 경험을 떠올리면 그 산을 오를 마음이 쉽게 생기지 않는다.

산을 올랐을 때 느꼈던 감동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산을 보고 가슴이 뛸 수도 있는데 말이다.

이미 머리에 새겨진 경험 때문에 비슷한 상황에서 판단과 행동에 한계선을 긋게 되는 것은 분명히 오류이다.


"여태까지 살아온 방식을 어떻게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겠어요?"

태산을 보고 산이 너무 높다며 주저앉는 사람의 생각이다.

"여태까지 살아 봐서 이 방식이 안 좋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으니 이젠 다른 방식으로 살 겁니다."

태산이 높아도 오르는 사람의 생각이다.

똑같은 전제에서 정반대의 결론이 나올 수 있다.

같은 경험에서 전혀 다른 판단과 결정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오르는 이야기만 하면 누구나 다 경쟁 대열에 끼어서 열심히 위를 보고 올라야 한다는 생각에 빠질 우려가 있다.

인생이 오르막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산다.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다 가지고 갈 수는 없다.

놓을 때는 과감하게 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뗏목으로 강을 건너고 나서 고마운 뗏목이라고 지고 가려한다면 어떨까?

뗏목은 물에 있어야 쓸모가 있는 법이다.

강을 건넜으면 뗏목은 강에 두고 떠나야 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뗏목의 비유이다.

지금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 쓸데없이 들고 가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보일 것이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는 것처럼 내려놓고 또 놓으면 온전하게 가벼워지지 않을까.

손을 비워두어야 필요한 것을 잡을 수 있다.

손을 쓰려면 손이 비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마음에 갖고 있는 수많은 기억들을 온전하게 다 가지고 인생길을 가는 것은 뗏목을 지고 길을 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내가 가진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과감히 주고 길을 떠나면 기분도 좋다.

오르고 또 올라서 정상을 맛보고 놓고 또 놓아서 마음을 새롭게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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