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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Feb 15. 2019

근심과 곤란 속에서

역경의 가치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느니라.

보왕삼매론의 두 번째 구절이다.

근심과 곤란 없이 안온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왜 없겠는가.

하지만 세상살이는 그리 만만치 않은 법이다.



온실 속에서 자란 화초는 화려하지만 생명력이 약하다.

거센 비바람 속에서 살아남은 초목은 역경을 버텨낸 덕에 굳세고 강인하다.

살기 편한 조건을 순경(順境)이라 하고, 어려운 조건을 역경(逆境)이라 한다.

순경은 위험하지 않아서 마음 놓고 즐길 수 있기에 여유롭고 평화롭다.

역경은 위험해서 힘을 들여 버티며 애써야 하기에 긴장되고 힘들다.

역경은 자연스러움을 거스르는 것이다.


화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자란 사람들은 대체로 순수하고 온화한 분위기를 풍긴다.

집안에 서울대 출신이 즐비하고 자신도 서울대 법대를 나와 사법고시에 합격해서 사법연수원에서 연수를 받는 한 연수생이 알고 지내던 상담 교수한테 아주 진지하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법전에 보면 폭행이나 사기, 도둑질, 강간 같은 죄목들이 나오는데 도대체 그런 죄를 저지르는 마음이 왜 생기나요? 그런 흉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아요."

이 질문을 받은 상담 교수는 무어라 해줄 말이 없었다고 한다.


의과 대학이나 법과 대학은 성적이 아주 좋아야 갈 수 있는 곳이다.

의사나 법조인은 전문직으로 대접을 받는다.

그런데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법률을 다루는 법조인이 되는 과정이 단지 성적으로 판가름되어도 좋을까?

별 걱정 없이 공부만 해서 좋은 성적을 받고 희망대로 의사나 법조인이 되었을 때, 과연 그들이 세상의 거칠고 험한 풍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얼마나 이해하고 자신의 직분을 다할 수 있을까 걱정된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의사협회가 보이는 모습을 보면 이런 걱정이 현실화되어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사람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일을 자신들이 독점하려고 하는 독선을 보인다.

그들은 한의학을 돌팔이 취급하기도 하고,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들을 자신들이 지도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자기 잣대로 보면서 업신여기는 셈이다.


곤란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자칫 교만해지기 쉽다.

역경 속에서 근심하고 걱정하면서 인생의 쓴맛을 본 사람은 큰 어려움 없이 순탄하게 살아온 사람과 다르다.

어려운 문제를 푸느라 홀로 애쓰는 과정을 겪어야 그 문제를 깊이 이해하게 된다.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쉽게 해답을 얻는 사람은 그 문제가 갖고 있는 깊은 맛을 느끼지 못한다.

법을 다루면서도 그 법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인간의 심리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이 말을 두고 논란이 있다.

그릇되고 모순된 체제 속에서 순종을 강요하는 불순한 의도가 담긴 말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은 아주 강하게 반발한다.

반대로 이 말을 환영하는 사람들도 있다.

역경의 가치를 알고 그 역경 속에서 자신을 키우는데 전념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당신은 어떤 길을 가겠는가?

아무런 곤란이 없어서 근심하고 걱정할 일이 전혀 없는 탄탄대로를 신나게 달리고 싶은가.

오르막 내리막이 번갈아 나타나며 온갖 장애물이 있는 비포장 도로를 힘써 가며 체험하고 싶은가.

정답은 없다.

그러나 어떤 길을 고르느냐에 따라 그려지는 인생살이는 완전히 달라진다.

아무튼 사치한 마음으로 허영에 들뜨거나 업신여기는 마음으로 독선에 빠지는 그림은 보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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