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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Feb 22. 2019

바람직한 경제생활

수입의 건전성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말라. 이익이 분에 넘치면 어리석은 마음이 생기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작은 이익으로써 부자가 돼라.' 하셨느니라."

보왕삼매론 아홉 번째 구절이다.

분에 넘치는 이익은 누군가에게 큰 손해를 끼치는 일이다.

분수에 맞는 경제생활을 생각해 보아야겠다.



복권은 왜 살까?

복권 당첨금과 판매 총액을 합계해 보면 복권을 구입하는 행위는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쓰는 일이다.

돈에 여유가 있을 때 그 돈이 필요한 곳에 쓰이라고 기부하는 의미라면 복권이 의미가 있다.

그런데 작은 돈으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복권을 사는 것 같다.

만약 돈을 벌려고 복권을 산다면 이는 어리석은 마음이다.


이익이 분에 넘치면 어리석은 마음이 생긴다고 한다.

분에 넘친 이익을 기준으로 삼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분에 넘친 이익이란 제대로 분배되지 않은 이익을 말한다.

생산자와 유통업자, 그리고 소비자가 경제활동의 주체들이다.

유통업자가 분에 넘치는 이익을 얻으면 생산자는 흘린 땀을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고 소비자는 바가지를 쓰는 꼴이 된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차이가 아주 크다고 알고 있다.

대기업은 많은 돈을 벌고 중소기업은 아주 불리한 조건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분수로 보자면 대기업은 분에 넘치는 수입을 올리는 것이고 중소기업의 수입은 분에 모자란 셈이다.

불합리한 경제구조 속에서 누군가는 분에 넘치는 수입을 올리고 누군가는 한참 부족한 수입을 올리는 이 현상을 한마디로 '빈익빈 부익부'라 한다.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빈자는 더 빈자가 되는 일이 계속 진행되면 사회는 어디로 갈까.

땀을 흘린 만큼 알맞은 보상이 주어진다면 그 사회의 경제 구조는 튼튼해진다.

필요한 활동에 필요한 인력이 알맞게 투입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투기성 수입이나 권력형 비리에 따른 부당이익이 판치는 사회에선 정작 필요한 일에 투입될 인력이 부족해서 부실한 요소가 곳곳에 생기기 마련이다.

아이들이 '일 안 하고 수입이 크게 보장되는 직업'을 희망으로 하는 사회의 앞날이 어떨까 생각하면 끔찍하다.


노동을 해서 노동의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 임금이다.

많은 노동을 하는데 임금이 적거나 적은 노동에 많은 임금이 주어진다면 문제가 생긴다.

노동을 적게 하고 수입을 많게 하려는 심리가 사회 전반에 퍼진다면 그 사회의 경제체제는 허약해질 수밖에 없다.

분에 넘치는 이익이란 들인 노동력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수입을 뜻한다.

사회 전체로 보면 분에 넘치는 이익이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작은 이익으로써 부자가 되려는 태도를 가지면 전체 사회의 생산성이 튼실해진다.

노동력을 들여서 만들어낸 가치보다 더 많은 임금이 지급되면 그런 제품이 많이 생산될수록 적자가 커진다.

인건비가 오르면 가격경쟁력이 떨어져서 경영이 어려워지니까 값싼 노동력을 찾아 공장을 이전하지 않는가.

가치가 분배되는 구조에 합리성이 있을 때 경제는 순조롭게 돌아간다.

경제민주화라는 거창한 말도 본질은 이익을 정당하게 나누자는 이야기이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벌면 게으르고 탐욕스러워지기 쉽다.

많이 일하고 적게 벌면 생활이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노동과 수입이 균형을 이루어야 경제생활이 순조롭다.

분에 넘치는 이익을 바라는 어리석은 마음은 전체 사회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만큼의 노동과 수입으로 기준을 삼을 때 바람직한 경제생활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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