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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Feb 23. 2019

억울함을 제대로 푸는 법

수행의 효과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말라.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 수행하는 문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보왕삼매론 마지막 열 번째 구절이다.

한동안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이라 그만큼 각별하기도 하다.

억울한 심정을 온전히 알게 되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가르침이다.


왜 억울할까?

공정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공정하지 못하다는 생각은 왜 하게 될까?

가지고 있는 공정성의 기준이 현실과 맞지 않아서이다.


만약 이치에 맞고 보편타당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면 억울한 느낌보다는 제대로 바로잡으려는 마음이 먼저 일어날 것이다.

억울하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은 이미 자신의 기준대로 되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로 공정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면 일을 바로잡기 위해 애쓰는 것이 당연하다.

바로잡으려 애쓰는 과정에서 능력이 부족하면 능력을 키우는데 집중하고, 오해가 있으면 오해를 푸는데 힘을 쓰면 된다.


억울함을 밝히려고 하지 말라는 말씀이 전혀 이해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잘못된 것은 바로 잡고 사회에 존재하는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고 나름의 의분을 갖고 있던 시절이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인권이 무참히 짓밟히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부귀영달을 쫓는 삶이 비겁하고 초라해 보였다.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억울한 일을 없애야 한다며 현실의 모순에 분노하던 시절에 '억울함을 밝히려고 하지 말라.'는 말씀은 기존 체제에 순응하라는 뜻으로 이해되어서 거부감이 강하게 들었었다.


그런데 거부감은 나의 오해였음을 알게 되었다.

'억울함을 밝히려고 하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된다.'는 구절을 이해하면서 오해가 풀렸다.

'억울함을 밝히려고 한다'는 말은 '왜 억울한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억울함을 기정 사실화하고 변명을 하거나 탓하는 마음을 낸다'는 뜻이다.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때 당신은 마음을 어떻게 쓰는가.


갈등이나 다툼이 일어날 때 당사자들은 다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그 사정이라는 것이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기 입장을 앞세우는 것들이다.

자기 입장에서 보니 이해관계가 부딪힐 때 정말로 공정한 관점을 가지기 어렵다.

이미 자기중심적인 관점에서 판단을 해서 억울하다고 하는 것이다.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생각이 들 때, 분노하거나 원망하는 대신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기중심적인 관점을 검토하고 수정할 수 있으면 잘못된 일을 바로 잡아갈 수 있는 길을 찾기가 훨씬 더 쉬워진다.

'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 수행하는 문을 삼는다.'는 말씀이 바로 이렇게 하라는 가르침이다.

수행이란 자신의 허물을 고쳐서 바로잡는 행위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고 더 성숙하고 현명한 관점을 가지는 방향으로 애쓰는 것이 수행이다.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말라는 것은 그냥 순종하고 순응하면서 살라는 말이 아니다.

억울함을 기정 사실화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히려 억울함을 느끼게 하는 자기중심적인 관점을 직시해서 바꾸라는 뜻이다.

억울함을 당해서 자기를 되돌아보고 더 현명하고 성숙한 안목을 키우는 방향으로 마음을 쓰면 원망으로 괴로워지는 대신에 성장하는 열매를 맛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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