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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Feb 26. 2019

휘둘리기보다 휘두르는 게 낫다

주인의식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

있는 그 자리에서 주인이 되고 다 진실되게 하라.

가슴을 시원하게 하는 말씀이다.

눈치 보며 처분을 기다리는 노예가 아니라 당당한 주인으로 참되게 살라는 이야기인데,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을만하다고 생각한다.



20여 년 전쯤에 있었던 일이다.

한 대학에서 자살하는 학생이 해마다 생기자 전문상담원을 모집한다고 해서 지원을 했다.

당시에 교통이 좋은 곳으로 이사를 하려는 마음이 있었는데 때마침 기회가 생긴 것이다.

면접을 하는 자리에서 면접관들의 질문을 들으며 몹시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면접관 가운데 상담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주 세속적인 질문만 던지며 충실하게 말을 잘 들을 사람을 뽑으려고 하는 그들의 모습에 화가 났다.

학교에 닥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제대로 된 인재를 모셔야 한다는 생각을 해야 마땅할 텐데 그들은 너무나 권위적인 모습으로 면접을 진행했다.


말도 안 되는 질문에 나름 성실하게 답변하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말을 꺼냈다.

"제가 질문을 해도 되겠습니까?"

"해 보세요."

"제가 알기로는 이 학교에서 학생들이 자살하는 일이 자꾸 발생해서 전문 상담자를 뽑으려고 한다고 들었습니다. 과연 학교 측에서는 적임자인 전문가를 모시기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하셨습니까?"

"......"

나는 면접에서 보기 좋게 떨어졌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너무 건방져서 떨어뜨렸다고 한다.

그런데 그나마 뽑힌 사람도 그 학교에 가지 않았다.

제시했던 조건들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더란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들으면 그 대학이 별 볼 일 없는 작은 지방대학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대학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학이었다.

면접에서 미끄러지고 착잡한 심정이 가시지 않았다.

그 분야에서 최고의 인재를 키우는 대학에 제대로 된 상담 시스템이 갖춰지기는 커녕 전혀 감이 없는 대학 당국자들이 그 자리를 차고앉아 있으니 어찌 큰일이 아니겠는가.


내가 면접관에게 했던 질문이 당돌하고 버릇없는 질문이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들은 나를 아랫사람이라고 여긴 것이다.

면접관은 상전이고 피면접자는 그들을 떠받들고 눈에 들려고 애를 써야 하는 위치에 있다고 보는 셈이다.

구시대의 낡은 발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내가 면접관에게 그런 질문을 던진 것은 애정이 있기 때문이었다.

자살로 빠져드는 인재를 한 명이라도 구해낸다면 좋은 인재를 잃지 않아서 사회 전체에도 아주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만약 그 학교에 상담자로 일할 수 있었다면 모든 에너지를 불살랐을 것이다.


가는 곳마다 주인으로 살라는 수처작주라는 말씀은 내 마음에 닻처럼 박혀서 중심을 잡고 있다.

이런저런 풍파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주도해서 살아가는 주인의 모습으로 살고 싶다.

그런데 주인 가운데 나쁜 주인도 있다.

이른바 갑질이라는 악행을 서슴지 않는 주인 말이다.

다른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지배하고 조종하려 드는 주인은 나쁜 주인이다.

그래서 입처개진이 짝으로 붙어야 이 말씀이 완성된다.

참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자신을 노예의 위치에 두고 주인의 눈치를 살피는 삶은 생각하기도 싫다.

이것저것 눈치를 살피며 주인의 눈에 들어 예쁨을 받으려고 굽실거리는 모습은 불쌍하다.

반대로 갑질을 일삼으며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자들은 꼴도 보기 싫다.

그들은 참된 주인이 무엇인지 모르는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좋고 남도 좋은 삶을 생각하지 않는 자는 참된 주인이 아니다.



힘을 길러서 주인이 되자.

그렇지만 나쁜 주인은 되지 말자.

휘둘리는 노예의 삶이나 마구 휘두르는 못된 주인이나 못난 모습인 점에서는 같다.

휘두르더라도 정의의 칼을 휘두르자.

입장을 바꿔 헤아릴 줄 아는 좋은 주인으로 사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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