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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Feb 25. 2019

우물 안 개구리를 면하려면

메타인지

우물에서만 살던 개구리한테 말을 걸었다.

"바다를 보러 가자."

"바다가 뭔데?"

"아주 넓고 커서 바라만 봐도 속이 시원하게 확 트여."

"여기(우물)만큼 커?"

개구리한테는 우물보다 큰 것이 없었다.



당신이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떠한가?

얼마나 자유롭고 행복한가.

얼마나 만족스러운가.

혹시 정신없이 바쁘게 사느라 삶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지는 않은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일상을 떠나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어서'라는 대답을 듣곤 한다.

익숙한 것에 지치고 새로운 것이 흥미를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마음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을 겪다 보면 새로움에 흥미를 느끼는 마음이 변한다.

익숙한 것에 편하게 안주하고자 하는 마음이 커지는 것이다.


주어지는 자극이 많으면 처리해야 할 정보도 많아진다.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정보가 주어지면 과부하가 걸려서 마음이 고장 난다.

과한 전류가 흐르면 회로가 타버리는 것처럼 신경을 과하게 쓰면 넋이 나가기도 한다.

넋이 나가면 멍한 상태로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한다.


어릴 때에는 고생하거나 쓰디쓴 경험을 별로 하지 않아서 새로움에 호기심을 많이 가지는 편이다.

나이가 들면서 여러 가지 경험이 쌓이고 일상의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면 새로움보다는 편하고자 한다.

이렇게 해서 자기만의 세상이 생기고 굳어진다.

자기가 경험하고 생각한 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착각한다.

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누군가의 관념 속에 들어갈 만큼 작지 않다.

보고 듣고 경험한 세상 밖에도 세상은 있다.

경험해서 아는 세상과 생각도 하지 못한 세상 가운데 어느 것이 더 클까?

우물 안 개구리가 "바다가 이 우물만큼 커?"라고 묻는 것과 같은 질문일 것이다.


그런데 사람한테는 참 묘한 능력이 있다.

'초월'이라는 것인데, 자신의 경험이나 주어진 상황을 넘어서서 보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다.

자신의 생각도 생각할 수 있다.

'아! 내가 화를 내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린다.

단지 행동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행동을 바라볼 줄도 안다.

자신이 우물에 갇혀 있었음을 알게 되는 순간, 그 우물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 사람이라는 말이다.


어떻게 우물 밖으로 나오는가?

'생각'에 열쇠가 있다.

자극에 반응해서 일어나는 생각 말고 다른 종류의 생각이 있다.

'메타인지'라는 것인데, '인지를 인지하는 작용'이다.

명상에서 쓰는 말로는 '알아차림'이라고 한다.


원리는 단순하다.

자신의 생각을 관찰하면 된다.

자극에 반응하는 모습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듯 관찰하는 것이다.

몸에서 느끼는 것이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그저 관찰한다.

이것이 자기가 갇혀 있는 우물을 보는 방법이다.

우물이 보이면 나가면 된다.



세상엔 아직 인류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많다고 한다.

인생이라는 여행에서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얼마나 많을까.

우물 안 개구리로 일생을 보내고 싶은가.

새로운 것을 체험하고자 하는 마음은 건강한 본능이다.

우물에서 나와 드넓은 바다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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