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감
"멀리 할 수 없는 사람인데 너무 싫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싫은 감정에 당황하고 있는 사연이다.
상대의 태도에 거부감이 드는데 멀리 할 수도 없다.
싫은 감정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8월 23일 참나원 팟캐스트 방송)

특정한 누군가를 싫어하는 것이 처음이다.
그는 상대의 감정이 상할 수도 있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거부감이 강하게 일어난다.
그런데 멀리 할 수 없는 사람이다.
피하고 싶은데 피할 수 없다.
어떻게 하면 그를 덜 생각할 수 있을까.
어떻게 대해야 좋을까.
싫은 감정의 영향을 덜 받는 방법을 알고 싶다.
사연에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다.
단지 감정이 상할 수도 있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는 언급만 있다.
문맥을 보면 사연자 자신도 감정이 상하는 것 같다.
이렇게 거부감이 드는 상대한테 어떻게 대응할지 막막해서 사연을 올렸다.
먼저 자신의 거부감을 객관화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싫어할 만한 것을 싫어하는 것인지 판단해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마다 감정의 허용범위가 다르다.
사소한 오해로 싫어하게 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만약 객관적으로 상대가 무례한 것이라면 용기를 내야 한다.
상대의 무례를 외면하거나 모른 척하는 것은 싫은 상황이 지속되도록 돕는 꼴이다.
어떤 점을 받아들일 수 없는지 명확하게 밝힐 줄 알아야 한다.
적절한 반응을 하지 않으면 상대는 자신의 잘못을 고칠 기회를 잃게 된다.
속은 상하는데 겉으로 괜찮은 척하는 가식은 서로에게 좋지 않다.
속상한 마음을 참는 쪽은 답답하고 괴롭다.
상대는 자신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고 있음을 알지 못하게 되어 개선의 기회를 놓친다.
용기를 내서 알려야 하는 이유다.
자신의 감정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돌아보는 과정에서 내공이 생긴다.
다양성을 이해하게 되고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길러진다.
오해나 갈등을 알아차리고 해결할 수 있는 안목도 키워질 수 있다.
속상함을 곱씹는 것은 안팎으로 최악의 대응법이다.

자기 성찰이 먼저다.
자기를 보지 못하면 감정에 묶이고 만다.
자기를 보아야 감정을 다룰 수 있다.
거부감은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는 신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