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기연 Feb 28. 2019

참회하면 가벼워진다.

직면하는 용기

"죄무자성 종심기- 죄는 자성이 없어 마음 따라 일어나니

심약멸시 죄역망- 마음이 사라지면 죄도 또한 없어지네

죄망심멸 양구공- 죄도 마음도 없어 둘 다 비워지면

시즉명위 진참회- 이를 일러 진정한 참회라 하네."

천수경에 나오는 참회게이다.

죄의 본질을 밝혀주는 반가운 가르침이다.




참회란 잘못을 뉘우쳐 마음을 바로잡는 행위이다.

참(懺)이란 잘못을 뉘우침이고, 회(悔)란 다시는 잘못을 범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뉘우치는 것인가.

죄(罪)이다.

그런데 과연 죄란 무엇일까?


도덕성 발달 수준을 알아보는 문제가 있다.

"한 남자가 있었다. 그의 아내가 병이 들었는데 너무 비싼 약값을 감당할 수 없어서 약사한테 사정을 이야기하고 우선 사람부터 살리고 비용은 나중에 갚겠다고 했으나 약사는 냉정하게 거절했다. 그 남자는 약을 훔쳤다."

이 이야기에서 이 남자는 죄가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실정법을 적용하면 이 사람은 유죄이다.

그런데 죄의 유무를 판단하는 법의 기준은 과연 절대로 옳은 것일까.


배심원 제도를 두는 이유도 판단이 단순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유죄가 되기도 하고 무죄가 되기도 한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도둑질을 한 것과 소유욕으로 도둑질을 한 것이 같은 죄일 수 있을까.

죄를 지었다고 해서 수감되어 있는 사람들한테도 다 나름의 사정이 있고 핑계가 있다.

과연 죄라는 것이 무엇일까?


경전에서는 죄의 본질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죄는 본래 자성이 없는데 마음 따라 일어난다.'

자성이 없다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이것은 죄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는 말이다.

'살생이 죄이다'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을 해치려 하는 맹수를 죽이는 것도 죄일까?

'마음 따라 일어난다'는 말은 죄를 판단함에 있어서 그 행위의 동기가 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칼로 사람의 배를 가르는 것이 죄인지 아닌지 판단해 보자.

외과 수술을 하려고 배를 가르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에게 해를 입히려고 칼로 배를 찌르면 이것은 죄이다.

칼로 배를 찌르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목적이 무엇이냐가 중요한 판단기준이다.


도덕성 발달 수준으로 좀 더 자세히 이야기를 해 보자.

아직 도덕관념이 제대로 자리잡기 이전에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을 피해 정도로 삼는다.

설거지를 도우려다가 접시를 3개 깨뜨린 경우와 접시에 담긴 사탕을 훔쳐 먹으려다가 접시를 한 개 깨뜨린 경우에 접시를 3개 깨뜨린 잘못이 더 크다고 판단하는 식이다.

도덕 개념이 성숙하면 이제 행위의 동기를 판단하면서 관습이나 실정법을 기준으로 삼는다.

약속의 의미를 이해한 것이다.


인격이 성숙하고 원숙해질수록 더 보편성이 있는 자연법에 근거를 두기 시작한다.

실정법이라 하더라도 모순이 있으면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악법도 법이다."라며 독배를 마신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목숨보다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더 중하게 여겼지만, 악법이라 말한 것을 보면 그는 법에 온전히 순응하지는 않은 것이다.

실제로 실정법이란 것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화한다.


죄의식이나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이 뜻밖에도 많다.

죄의 본질이 '마음에 따라 일어나는 상대성'임을 뚜렷이 안다면 죄의식이나 죄책감을 완전하게 벗어날 수 있다.

낡은 제도나 관념, 관습 따위를 절대 기준으로 삼아 자신을 비난할 필요는 없다.

양심을 거스르지 않고 이치에 맞으며 현실성이 있는 기준을 마음의 중심으로 삼으면 간단하다.

잘못을 하면 뉘우치고 바르게 되돌리면 되는 것이다.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고 시행착오를 통해서 성장한다.



일이 잘못되거나 어긋났을 때 죄책감에 빠져서 괴로워한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평상심을 잃지 않고 차분하게 살펴서 어긋난 부분을 바로 잡으면 된다.

정말로 참회를 하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오히려 '이번 실수를 통해서 잘 배웠다.'라고 보람을 느낄 수도 있다.

실수가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실수라 하지 않는가.

언제든 바로 잡을 마음이 되어 있다면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않고 직면해서 실행할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참회의 효능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평상심이 '도'라는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