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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Sep 13. 2022

친구와 카톡으로 대화할 때

속셈

"친구가 대화중에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입을 다물어버려요."

친구의 속셈을 알 수 없어 답답한 사연이다.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면 상대는 답답하다.

다그치듯 물어보기도 애매하다.

(9월 13일 참나원 팟캐스트 방송)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생기는 일이다.

친구가 갑자기 반응을 하지 않는다.

친구의 의중을 헤아려서 마음에 들게 해야 답장이 온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이 아닌가.


예를 들어 "중국집 갈까?"라는 메시지에 답이 없다.

그래서 "그러면 일식집에?"라고 보내면 1초도 안 되어 답이 온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입을 닫아 버리는 것이다.

왜 이러는 걸까.


사연자는 갑자기 입을 닫아버리는 친구를 이해할 수 없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아니라고 답을 해주면 간단한 일인데 말이다.

응답이 없는 친구의 속을 헤아리느라 골치가 아플 지경이다.

심지어 친구가 너무 이기적이란 생각까지 든다.


속내를 밝히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협상을 할 때는 속내를 감추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그런데 이해가 걸려 있는 협상도 아닌데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면?

어쩌면 미성숙한 의존성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밝히고 요구하는 데는 책임이라는 부담이 따른다.

하지만 상대가 먼저 제안하면 책임은 상대의 몫이 된다.

조금의 책임도 지지 않으려고 심지어 거절 의사도 밝히지 않는다.

극단적인 수동성은 이렇듯 의존성에서 나오는 태도일 수 있다.


오히려 개방적인 질문이 나을지 모른다.

"중국집 갈래?" 대신에 "어떤 음식을 먹을까?"라고 묻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를 제한받지 않고 살펴서 말할 수 있게 기회를 주는 질문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발성이 길러지는 법이다.



다그쳐 물으면 쫓기는 기분이 들어 움츠린다.

책임을 면하려는 속셈으로 입을 다물어 버린다.

하지만 수동성은 오히려 다그침을 유발하기 쉽다.

속내를 나누려면 개방적인 분위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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