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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Mar 02. 2019

동대문에서 뺨을 맞았다면?

치환

아침에 부부가 말다툼을 했다.

남편이 화를 내며 출근을 했고, 아내는 아이를 깨우면서 신경질을 낸다.

아이는 강아지를 발로 걷어찬다.

강아지는 신발을 물어뜯는다.

무엇 때문에?



자아가 위협을 느낄 때 방어를 하게 된다.

의식하지 못한 채 거의 자동으로 일어나는 방어 행동을 방어기제라고 한다.

방어기제는 이치에 맞지 않거나 현실성이 없는 경우가 보통이다.

동대문에서 뺨을 맞았는데 광화문에서 화풀이를 하는 식이다.

문제의 원인을 다른 대상한테 풀려고 하는 것을 치환이라고 한다.


어릴 때 아버지의 심기가 불편하면 집안이 초긴장 상태에 빠지곤 했던 기억이 난다.

밖에서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집안에서 만만한 가족한테 화풀이를 하는 것이 온당할까?

왜 잘못도 없이 숨죽이며 조심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기분이 나쁘면 아무한테나 화를 내어도 좋다는 말인가.


나이가 들어 세상을 좀 더 겪으면서 기분이 나쁠 때 꼭 화풀이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님을 알았다.

어떤 사람은 화풀이를 하고 어떤 사람은 화풀이를 하지 않았다.

아무리 기분이 나빠도 지킬 것을 잘 지키는 사람도 있었고, 기분이 나쁘다고 엉뚱한데 화풀이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누가 마음에 들었을까.


어릴 때부터 화를 엉뚱한 곳에 푸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을 해서인지 나는 감정을 다른 대상한테 옮기지 않으려고 애쓴다.

동대문에서 뺨을 맞았으면 그 자리에서 해결해야 옳다.

왜 엉뚱하게 다른 곳에서 화풀이를 하는가.

문제의 원인은 그대로 두고 엉뚱한 곳에 화풀이를 함으로써 적어도 두 가지 잘못을 범하고 만다.


화풀이를 당한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보자.

약간의 실수나 잘못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이 책임져야 할 만큼 비난을 받거나 지적을 받으면 수긍할 수 있어도, 지나친 비난이나 지적은 받아들이기 어렵기에 억울한 심정이 생기기 쉽다.

억울한 심정을 제대로 풀지 못하고 또 만만한 대상한테 분풀이를 해버리면 피해가 확대 재생산된다.


더 심각한 것은 다른 곳에 화풀이를 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문제가 되었던 일은 그대로 방치되어 있기에 기분이 상하는 일이 자꾸 되풀이될 것이다.

풀지 못한 억하심정은 마음 깊이 박혀서 계속 독소를 만들어낸다.

원망하는 마음이나 미워하는 마음을 품고 있으면 마음은 안에서부터 썩어간다.

불편한 마음이 지속되면 면역력도 약해지고 풍기는 분위기도 어두워진다.


치환이라는 방어기제는 이처럼 안팎으로 해롭다.

인격이 미성숙한 사람일수록 치환을 많이 한다.

성숙한 사람은 치환을 하지 않는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딛고 일어나라." 하는 말씀이 치환을 경계하는 가르침이다.

회피하거나 치환하지 말고 직면해서 해결하라는 말이다.



상담을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방어기제를 쓰는 현상을 많이 보게 된다.

상담 관계가 잘 형성되고 문제를 직면해서 해결하는 과정에서 방어기제를 다룬다.

자신이 회피나 억압, 또는 치환과 같은 방어기제를 쓰고 있었음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효과를 보곤 한다.

직면하는 용기를 내면 많은 것이 보인다.

보여야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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