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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Sep 30. 2022

아빠가 너무 보고 싶다

그리움

"시댁의 푸짐한 차례상과 아빠 산소의 초라한 사과 하나가 대비되어 슬프다."

돌아가신 아빠가 그리운 딸의 독백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그리움이 올라오곤 한다.

그리움도 지나치면 화가 될 수 있다.

(9월 30일 참나원 팟캐스트 방송)



아빠가 돌아가신 지 6년이 되었다.

이제는 슬픔도 무뎌진 것 같다.

올해 처음으로 아빠 제사상을 직접 차렸다.

천하의 불효자식인 남동생 때문에 제사를 가져왔다.


시댁의 차례상을 거들다가 아빠 산소에 달랑 놓였던 사과 한쪽이 떠올라 슬펐다.

가난한 살림에 아빠는 늘 술을 드시고 잠드셨다.

천 원짜리 안주 하나 사들고 들어오셔서 한 잔 드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당시에는 싫었지만 이제는 애잔하기만 하다.


사연자는 대화체가 아니라 독백으로 사연을 이어갔다.

마지막에는 위로라도 받고 싶어서 글을 올렸노라 밝혔다.

딱히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냥 한을 읊조리듯 그리움을 풀어낸 것이다.


독백 가운데 '천하의 불효자식 남동생 새끼'라는 표현이 있다.

남동생의 거부로 제사를 지내지 않게 되어 사연자가 제사를 가져온 것 같다.

아마도 남동생한테는 아빠가 달리 기억되는가 보다.

아무튼 사연자는 남동생이 밉다.


고인이 된 아빠가 불쌍한 만큼 제사를 거부한 남동생이 미울 것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나름의 사정은 있는 법이다.

남동생과 깊은 대화를 나눠봐야 하지 않을까.

죽은 아빠가 그립다고 하면서 산 남동생을 원망하며 살 것인가.


그리움도 과하면 상처가 난다.

위로를 받고 싶을 만큼 슬픔이 차오르면 마음이 상할 수 있다.

연민이 원망과 미움의 원인이 되면 더욱 해롭지 않겠는가.

그리움에 빠지지 ㅇ낳고 가만히 바라볼 때 평온을 유지할 수 있다.



추억은 실제보다 아름답게 느껴지곤 한다.

고생스러운 기억도 세월이 지나며 아련하고 애틋해지기 마련이다.

추억이 너무 미화되면 상대적으로 현재가 더 무거워질 수 있다.

추억을 회상할 때도 절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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