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화
어느 날 여우가 길을 가다가 높이 열려있는 포도를 보았다.
잘 익은 포도를 본 여우는 입에 침이 고였다.
그런데 너무 높아서 도저히 따먹을 수 없었다.
여우는 포기하고 계속 길을 가면서 중얼거렸다.
"저 포도는 너무 시어서 먹을 수가 없어."
이솝우화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이다.
합리화라는 방어기제를 설명할 때 많이 드는 예화이기도 하다.
자신이 옳다고 믿고 싶어 한다.
입 밖으로 튀어나간 이야기가 틀린 것으로 밝혀졌을 때에도 일단 우기고 본다.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닌 데에도 이렇게 다툼이 생기는 일을 흔히 볼 수 있다.
자신이 실수했거나 틀렸음을 인정하는 일이 왜 이리 어려울까.
사람의 내면 심리를 들여다보면 몇 개의 층이 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피부로 느낌 촉감을 오감이라 하는데, 이런 감각이 의식의 일차 재료가 된다.
감각을 바탕으로 해서 판단하고 계산하고 결정하는 의식활동이 일어난다.
이 의식 작용은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고 흔히 생각이라 불린다.
그런데 이렇게 알아차릴 수 있는 의식 작용을 알게 모르게 좌우하는 작용이 있다.
잠재의식은 의식의 뿌리와 같다.
판단하고 결정을 할 때 감각을 기초로 하는 것 같지만, 잘 들여다보면 내면의 어떤 경향성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짜장면을 보고 식욕이 생기는 경우에 짜장면이라는 자극이 식욕을 일으킨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만약 짜장면이 식욕을 일으켰다면 모든 사람이 다 먹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텐데 사정이 그렇지 않다.
어떤 사람은 짜장면보다 짬뽕을 더 좋아한다.
같은 대상에 전혀 다른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한 사람이 무엇을 결정할 때 그 나름의 취향이 이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각자 가진 취향에 다라 다른 선택을 한다.
그렇다면 이런 취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까마득히 잊어버린 과거 경험이라 하더라도 의식 깊숙이 저장되어 있다.
의식은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의식에 영향을 주는 이 층을 잠재의식이라고 한다.
잠재의식은 자아(自我)들의 집합체이다.
자아(ego)는 감각자극을 받아들여 판단하고 결정하고 선택하는 주체이다.
'나'라고 생각하는 주체란 말이다.
이 자아가 위협을 느낄 때 방어기제가 발동한다.
사실을 왜곡해서라도 자아는 자신의 정당성을 지키려고 한다.
여우의 자아는 먹고 싶은 포도를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서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못 먹는 것이 아니라 안 먹는 것이야.'라고 현실을 왜곡해 버린다.
자신이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자아가 불편하게 여기는 일이다.
먹고 싶은데 능력이 없어서 못 먹는다면 속상하고 비참하다고 자아가 판단한다.
그래서 그럴듯한 이유를 들어서 자신의 무능을 부정하는 합리화라는 방어기제가 자동으로 작동된다.
합리화를 자꾸 하다 보면 진짜 욕구가 무엇인지 헷갈리게 된다.
자아가 방어기제를 많이 쓸수록 진심은 가려지고 내면은 복잡해진다.
복잡해진 내면은 온갖 불편한 증상을 일으키고 일상의 삶이 괴로워진다.
괴로움을 일으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계속 꿈속에서 헤맨다.
이러한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의식을 맑게 하는 명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