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취견
몸을 진짜 나라고 믿는다.
극단으로 생각한다.
인과를 부정한다.
그릇된 것에 집착한다.
헛된 것에 집착한다.
이 다섯 가지 견해는 온갖 괴로움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다섯 가지 나쁜 견해 가운데 마지막은 계취견, 또는 계금취견(戒禁取見)이다.
이치에 맞지 않는 헛된 계율 같은 것에 집착하는 것이다.
지켜야 할 것을 정하고 철저히 실천하는 것은 그 자체로 나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지키는 그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라면 어떨까.
계취견은 '이것은 꼭 지켜야 한다.'는 고집을 말한다.
당신은 무엇을 지키고 있는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그 종교에서 정해놓은 계율을 지키려 한다.
불교의 오계나 기독교의 십계명 같은 것이 많이 알려진 계율들이다.
이런 계율을 살펴보면 그것이 계율로 정해질 만한 이유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한마디로 이치에 맞고 현실성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종교의 계율에 의문을 품기도 한다.
나도 그랬다.
예를 들어서 '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라는 계율을 보자.
신념을 공유하는 그 종교 안에서는 이 계율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보편성을 가진 것일까?
계율을 해석할 때 오해가 생길 수 있다.
계율이 정해질 당시의 사회와 세월이 한참 흐른 다음의 사회는 분명히 다르다.
계급이 존재하던 신분사회와 계급이 사라진 현대사회에 똑같은 계율을 적용할 수 있을까.
이런 맥락을 생각해서 계율을 이해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말을 나는 이렇게 해석한다.
목적지를 향해서 가고 있는데 목적지가 바뀌어 버리면 어떻게 되는가.
목적지에 다다를 때까지 목적지가 바뀌면 안 된다.
그런 것처럼 자신의 인생에 궁극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종교의 대상이 바뀌면 얼마나 혼란스럽겠는가.
목적지를 분명히 하는 것처럼 신앙의 대상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 계율을 '목적을 분명히 하고 유지하라.'라고 해석하면 보편성이 있다.
'술을 마시지 말라.'는 계율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계율을 지킨다며 술을 마시지는 않지만 담배나 마약 같은 것은 한다.
"계율에 하지 말라고 안 했다."는 이유를 대면서.
이렇게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서 그것만 지키는 사람들이 계율을 제대로 이해한 것일까?
정말로 끔찍한 일은 계율을 제멋대로 해석해서 나쁘게 쓰는 경우이다.
원리주의자들이 그렇다.
이들은 자기들이 해석한 원리를 지킨답시고 테러나 폭력을 숭고한 행위라며 미화한다.
온갖 차별을 옹호하는 비뚤어진 계율들을 지킨답시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가.
상대 종교를 죄악시하면서 말살해버리려고 하는 끔찍한 독선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으며, 아직까지도 얼마나 많은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가.
이치에 맞지 않는 엉터리 계율에 정신이 팔려서 정말 중요한 가치를 잃어버리는 계취견의 폐해는 엄청나다.
정신이 온전치 못해서 사리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크고 작은 계취견의 노예라고 봐도 될 것이다.
사이비 종교나 혹세무민 하는 엉터리 주장에 사로잡혀서 자신도 혼란에 빠지고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인생은 얼마나 참혹한가.
자신이 믿고 있는 신념이나 의심 없이 자동으로 하는 행동들을 돌아보자.
방기연마인드코칭연구소 상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