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논리
"친구가 아니면 적" - 흑백논리
"하나만 봐도 다 알아" - 과잉 일반화
"느낌으로 봐서 그는 분명히 좋은 사람이야" - 감정 추론
"내 그럴 줄 알았어" - 선입견
"조선인들은 두들겨 패야 말을 들어" - 고정관념
바르지 못한 생각들이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아이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질문이다.
장난스럽게 던지더라도 듣는 아이는 곤란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렇게 유치한 생각이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있음을 아는가.
자기도 모르게 빠져 있는 흑백논리를 살펴보자.
사회복지, 평등, 노동 인권 보장과 같은 말에 '빨갱이'라는 틀을 씌운다.
모순을 바로잡으려 하는 개혁 정책에 '좌파 정권의 독재'라는 딱지를 붙인다.
공부만 강요받는 아이들의 저항을 '질풍노도의 사춘기'로 본다.
상대가 열렬히 환영하지 않으면 거부당했다고 생각한다.
적극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반대한다고 본다.
'아군이 아니면 적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흑백논리이다.
세상에는 흰색과 검은색 말고도 수많은 색이 있다.
그런데 흰색이 아니면 검은색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중간이 없이 극단으로 생각을 몰아간다.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지 못한다.
흑백논리의 폐해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심각하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종교전쟁은 왜 일어났는가.
인종, 지역, 계층, 세대 사이에 왜 갈등이 벌어지는가.
남성과 여성 사이를 갈라놓는 것은 무엇인가.
'편을 가르는' 사고방식은 흑백논리에서 나온다.
상담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인간의 괴로움은 너무나 다양하다.
하지만 괴로움의 형태는 다양하더라도 괴로움이 생기는 원리는 단순하다.
그릇된 생각 때문에 괴로움이 생긴다.
그래서 괴로움을 없애려면 그릇된 생각을 바로 잡으면 된다.
흑백논리가 갈등을 만들고 흑백논리에서 벗어나면 갈등이 해소된다.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 생각에서 벗어나 나와 너를 '우리'로 보는 것이 화합이다.
편을 갈라 맞서고 싸우는 이유는 서로 다른 점만 보기 때문이다.
서로 동의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서 합의를 이끌어내려 하지 않고 이해가 부딪히는 지점만 신경을 쓰다 보니 자꾸 부딪히기만 한다.
공통점을 기반으로 해서 서로의 차이를 조정하려는 유연한 생각을 하지 못 하고 흑백논리로 부딪히면 맞서고 다투기만 할 뿐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없다.
흑백이 사물의 경계를 표시한다면 유채색은 사물의 내용을 채운다.
극단의 경계만을 볼 것이 아니라 전체를 다 볼 일이다.
편을 가르기에 앞서 서로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친밀감이 생긴다.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은 흑백논리로 담을 수 없다.
경계를 짓고 그 속에 스스로를 가두는 흑백논리는 감옥과 같다.
굳이 감옥에 갇히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