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용기
모두가 입을 다물거나 거짓말을 할 때 그만이 진실을 말했다.
그런데 그들은 그를 괴롭혔다.
진실을 말하는 그를 왜 괴롭혔을까.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했나 보다.
비뚤어진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그를 보호해야 한다.
고 장자연 사건.
10년 전에 세상이 떠들썩했던 사건이다.
그런데 조용히 묻혔다.
10주년이 되어서 묻혔던 진실이 삐죽삐죽 솟아 나온다.
그 중심에 윤지오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신인배우였다.
그런데 무명 신인배우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부당하고 모순된 현실에 그의 꿈은 꺾였다.
장자연 씨의 의심스러운 죽음을 밝히는데 중요한 정보를 그는 알고 있었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그를 검찰이 괴롭혔다.
이어진 의문사들도 그냥 조용히 묻히고 말았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그는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10년이 지난 오늘 그는 용기를 내어 다시 진실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위협을 받는단다.
그는 보호받아야 한다.
독립운동가를 일제에 부역했던 친일경찰이 고문한 끔찍한 과거.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동족을 괴롭혔던 자들이 한 명도 처벌받지 않은 일.
현재는 어떤가.
아직 토착 왜구들이 설친다.
그들의 욕망은 사리사욕이다.
양심대로 살면서 용기를 낸 많은 사람들이 온갖 누명을 쓰고 사라져 간 것이 우리의 현대사다.
독재를 하고 온갖 이득을 독점하면서 대중의 피를 빨았던 자들은 아직 건재하다.
그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고자 거짓 선동을 밥 먹듯 한다.
어리석은 몇몇 대중은 그들의 술수에 속아 적폐 세력의 방패막이가 된다.
윤지오 씨처럼 용기 있게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이 그들에겐 눈엣가시일 것이다.
이번에도 그들은 다른 사건을 터뜨려서 물타기 방식으로 자신들의 치부를 묻으려 했다.
그런데 촛불 혁명으로 나라를 제자리로 돌려놓은 위대한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어쩌면 이번 사건으로 견고했던 적폐 세력의 벽이 허물어질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온갖 거짓과 기만을 부수고 진실이 드러나기를 바란다.
국민 대중은 소수 쓰레기 언론에 놀아나는 개돼지가 아니다.
이제 쓰레기 언론도 치워야 한다.
그러려면 거짓에 속지 않고 진실을 알고자 눈을 부릅떠야 한다.
진실을 말하는 용기 있는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
남의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