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
"게임 그만 하고 공부 좀 해"
"왜 그만해야 하는데요?"
"게임하느라 공부를 안 하잖아."
"할 건 다 한단 말이에요."
"이 녀석이 어디서 말대꾸야?"
이 대화로 아이에게 남는 것은?
어릴 때 많이 들었던 말이 잇다.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어디서 말대꾸야"
어린 마음에 무거운 바위가 짓누르는 느낌이 들었다.
덕분에 생각을 깊게 할 수 있었다.
대신 말수가 너무 없어졌다.
속에 할 말이 많은데 마음껏 표현을 못하면 어떨게 될까?
생각이 많아진다.
표현하지 못한 생각들이 마음속을 시끄럽게 한다.
어쩌다 말을 해야 할 때는 머뭇거린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말을 속에만 품고 있으면 속병이 들기 십상이다.
나이가 들면서 말이 많아지는 것은 표현을 충분히 하지 못하고 살았기 때문이다.
어른이 말씀하시면 잘 듣고 따라야 하는 문화가 빚어낸 참상(?)이다.
궁금하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왜 말을 막는가?
어떤 어른은 아이의 생각을 물어본다.
아이가 하는 말을 귀담아듣고 친절하게 답을 해 준다.
이런 어른이 하는 말은 이치에 맞고 수긍이 간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런 어른이 그리 많지 않았다.
말대꾸를 하지 말라며 으름장을 놓는 어른은 어떤가.
이들의 말은 일방통행이다.
이치에 맞지도 않을뿐더러 제멋대로이다.
아이가 궁금해서 묻거나 순종하지 않으면 위협을 느낀다.
그래서 "어디서 버릇없이 말대꾸야."라고 내뱉는다.
말대꾸를 하게 하자.
아직 이해가 되지 않았거나 충분히 납득이 되지 않을 때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해가 되거나 납득이 되지 않는데도 순종해야 한다면 일이 복잡해진다.
내키지 않는 일을 할 때 성심껏 열심히 할 수 있을까.
하는 시늉만 내니까 효율이 떨어진다.
말대꾸를 못 하게 한 결과이다.
요즘은 댓글이 말대꾸인 셈이다.
댓글이 많이 달리면 좋아한다.
소통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렇게 문화가 바뀌었다.
악플이든 선플이든 댓글이 많다는 것은 관심을 끌었다는 말이다.
내가 말을 한다.
상대가 내 말에 말대꾸를 한다.
말대꾸를 귀담아듣는다.
친절하게 대답한다.
비로소 소통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