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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Apr 09. 2019

배고픔을 이겨보려고

의지의 힘

배가 고프면 짜증이 났다.

열이 오르고 신경질이 나는 것이다.

어느 날 문득 짜증 내는 내가 보였다.

배고픔에 짜증 내는 것이 못나 보였다.

그래서 배고픔과 승부를 걸었다.



대학생 시절.

군부 독재로 사회 분위기는 무거웠다.

길을 가다가 불시에 검문을 당하곤 했다.

털리는 가방을 보면서 화도 나고 슬프기도 했다.

암울한 시절이었다.


3학년 때부터 ROTC(학군장교 후보생)를 했다.

금요일과 토요일은 군사훈련을 받았다.

신분도 학생이자 군인이 되었다.

학과 동료들한테는 "군바리 나가라."는 소리를 농담처럼 들었다.

농담인 줄 알지만 뼈를 때리곤 했다.


시국의 절박함과 장래의 삶이 무겁게 느껴지던 그 시절에 분이 많이 쌓였던 듯싶다.

조금만 배가 고파도 열이 오르고 짜증이 나지 않는가.

생각해 보니 어릴 때부터 배고픔에 유난히 민감했었다.

밥 먹을 때가 조금만 지나도 마음엔 풍랑이 일었다.

심각했던 시절에 어이없는 현상이었다.


배고픔도 어쩌지 못하는 나 자신이 한심해 보였다.

의연하게 대처해보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러다가 군대를 갔다.

전공이 심리학이다 보니 보병으로 가지 않고 정훈장교가 되었다.

정훈 장교는 몸을 많이 쓰지 않는다.

그래서 상당히 여유가 있었다.


대학 시절부터 문제라고 생각했던 배고픔에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굶어 보는 것'을 시도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시작했다.

한 끼를 굶었을 때 열도 오르고 짜증도 나고 견디기 힘든 감정에 휩싸였다.

그래도 강한 의지로 맞섰다.


두 번째 끼니를 거를 때 증상은 더 심해졌다.

어지럼증까지 느껴졌다.

심하게 느껴지는 증상만큼 의지도 더 강하게 다졌다.

이를 악물고 버텼다.


세 번째 끼니를 거를 때는 이미 힘이 많이 빠졌다.

그냥 배가 고프고 힘이 없을 뿐 짜증이 많이 줄었다.

의지를 강하게 다질 필요도 없었다.

다만 '이러다 잘못되는 것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물러 서지 않았다.


네 번째 끼니부터는 오히려 마음이 가라앉았다.

힘이 없을 뿐 짜증도 나지 않고 열도 오르지 않았다.

한 이삼일 굶었던 듯싶다.

마음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그냥 평온했다.

그래도 식사를 다시 시작했다.


단식을 알지도 못했다.

그냥 배고픔을 이겨보려고 한 것이었다.

회복식이고 뭐고 없었다.

다시 먹는 밥이 정말 맛있었다.

그 후로는 밥시간이 늦어져도 전혀 짜증이 나지 않는다.



의지로 본능을 이길 수 있다.

사람들은 본능이 의지보다 강한 줄 착각한다.

그래서 본능을 의지로 이겨내는 사람을 '독종'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런 뜻에서 모든 사람은 독종일 수 있다.

독하지 않으면 본능에 지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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