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유심조
대학 3학년 때 좌골신경통을 얻었다.
어떤 자세도 다 불편했다.
건강하다는 자부심을 잃었다.
대신 욕심을 조절하는 법을 배웠다.
결국 인간미를 얻었다.
학군사관후보생.(ROTC)
원래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군대는 갈 것이고 기왕이면 장교로 생활해야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마침 장학금도 준단다.
그래서 지원했다.
길거리에서 보이는 제복 입은 후보생들의 모습은 깔끔하다.
그런데 훈련은 깔끔하지 않았다.
기고 구르고 기합 받고...
훈련복은 땀과 흙에 절었다.
가슴에 쥐가 날 정도였다.
오기가 생겼다.
불합리하게 받는 기합에는 화가 났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적당히 요령을 부리며 조심했어야 하는데 악으로 버티다 보니 무리가 왔다.
허리가 망가졌다.
훈련을 받다가 다친 것이 아니다.
누적된 무리가 어느 날 갑자기 터져버렸다.
몸이 심하게 경직되었다.
앉아도 아프고 서도 아프고 누워도 아팠다.
어떤 자세를 해도 아팠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허리에서 전해지는 통증을 견딜 수 없었다.
진단을 받아보니 디스크가 아니라 좌골신경통이란다.
22살에 얻은 병이 아직까지 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했던 체력단련으로 운동을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나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허리를 다치고 나니 멀쩡하게 걸어 다니는 사람도 부러웠다.
우월감이 열등감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허리병을 얻은 이후로 내 삶은 달라졌다.
무엇을 하더라도 조심을 해야 했다.
조금만 무리를 한다 싶으면 바로 허리에 신호가 왔다.
실제로 3년에서 5년 주기로 한 번 씩 크게 아프곤 했다.
병을 달고 사는 삶은 불편함이 많다.
군에서 제대하고 절에 다니기 시작했다.
몸 관리를 잘해서 다 나은 줄 알았는데 절을 하면서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삼천배를 할 수 없었다.
천오백 배 정도 하면 몸에 벼락이 친다.
뜨거운 열정도 삭혀야 했다.
그런데 가만히 돌아보면 허리병 때문에 잃기만 하지는 않았다.
조절하는 법을 익혀야 했다.
아니, 허리가 신호를 보내는 덕에 저절로 조절하게 되었다.
과유불급을 몸으로 익힌 셈이다.
하늘 높은 줄 몰랐던 자부심이 꺾였다.
대신 낮추는 법을 알게 되었다.
우월감으로 남을 무시하던 교만과 이별할 수 있었다.
나아가 어떤 처지에 놓여 있더라도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할 줄 알게 되었다.
한마디로 인간미에 눈뜬 것이다.
아픈 이유도 가지가지다.
누구는 몸이 아프고 누구는 마음이 아프다.
여기선 열등감으로 저기선 우월감으로 갈등한다.
아픔에 빠지면 괴롭다.
아픔을 받아들이면 평온하다.
아프다고 불행해지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