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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May 25. 2019

소는 없고 사람만 있다

망우존인(忘牛存人)

집으로 돌아오니 소를 잊는다.

소는 본성을 찾기 위한 수단이다.

목적을 이루면 수단은 버린다.

계속 수단에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다.

놓을 줄 알아야 한다.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넜다.

뗏목은 어떻게 할 것인가?

고마운 뗏목을 버리면 너무 냉정한가?

그렇다고 무거운 뗏목을 지고 걸어갈 것인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을 방편이라고 한다.

방편은 상황에 따라 필요하다.

조건에 맞는 방편을 쓸 줄 알아야 한다.

길이를 잴 때는 자가 방편이고 무게를 달 때는 저울이 방편이다.

상황이 바뀌면 당연히 방편도 달라진다.


일상에 쫓겨 자신을 잊고 살다가 자신을 찾아 나섰다.

자신의 본성을 보거나 듣거나 만질 수 없기에 방편으로 소를 내세웠다.

소(본성)를 찾아 나서서 발자국을 발견했다.

계속 추적해서 결국 소를 보고 고삐를 꿰어 잡았다.

소를 길들여 집으로 돌아왔다.

아제 제 자리로 돌아왔으니 소는?


계속 소를 붙들고 있으면 문제가 생긴다.

여럿이 모여서 일을 할 때 자기 방식만 고집하면 어찌 되는가.

소만 돌보느라 집안일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소는 누가 키우는데?" 하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할 일을 해내는 것으로 충분하다.


십우도의 후반부 그림은 내면 수양보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담고 있다.

소를 잊고 사람이 남는 모습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자신의 취향, 습성, 기호를 내세워서는 집단의 평화가 깨진다.

지켜야 할 법과 규칙 같은 질서가 있다.

공(公)이 먼저이고 사(私)는 나중이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자기를 내세우면 다툼이 생기기 쉽다.

자기를 잊어야 온전히 어울릴 수 있다.

놀 때는 놀고 일할 때는 일을 한다.

같이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 뿐, 고집부리는 자아는 없다.

소를 잊음은 함께 어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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