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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May 30. 2019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는데

희망

쥐구멍은 피난처다.

눈에 띄지 않아야 하기에 어둡다.

그런데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단다.

실낱같은 희망일까.

기대해도 될까.



앞이 보이지 않는 시절이 있었는가.

깜깜하고 막막해서 암울하다.

아무런 희망도 없다.

이럴 때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큰 좌절로 절망할 때 괴로울까?

뜻밖에 묘한 감정도 경험된다.

차라리 후련하고 가볍기도 하다.

긴장이 풀리며 해방되는 것이다.


쥐구멍에 볕이 들면 어떨까?

쥐가 좋아할까.

쥐는 어둠에 익숙해져서 오히려 당황할지 모른다.

밝아진 쥐구멍이 쥐한테 반갑지만은 않다.


어두운 쥐구멍보다 밝은 쥐구멍을 좋아하는 것은 쥐가 아니다.

당사자인 쥐는 다른 쥐구멍을 찾을 것이다.

쥐구멍에 볕이 들길 바라는 것은 사람의 시각이다.

막상 어둠에 빠져 있는 당사자는 밝은 희망을 가지기 어렵다.


어둠의 세계든 밝은 세계든 나름의 안정성을 가지고 있다.

익숙한 대로 행동하는 습성이 있기에 변화가 어려운 것이다.

쥐구멍에 볕이 드는 것 같은 변화는 새로운 도전 상황이다.

희망을 가진 자라야 반길 수 있다.


당신은 일상에 만족하는가.

혹시 어두운 쥐구멍에 익숙해서 볕을 피하고 있진 않은가.

현실 문제와 모순을 외면한 채 그냥 순응하고 있다면 어둠에 길들여진 것이다.

볕을 바라지 않는데 어떤 변화가 생기겠는가.


고통에 익숙해져서 희망을 잃어버리는 것을 좌절이라고 한다.

줄기가 꺾이면 말라죽기 마련이다.

살고자 하는 의욕을 놓아버렸을 때 일순 편하기도 하다.

하지만 어둠에 빠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환경이 달라지면 좋아질 거란 생각들을 한다.

그런데 쥐구멍에 볕이 들 때 도망가는 쥐를 떠올려보자.

환경이 바뀌어도 습성이 그대로라면 변화가 달갑지 않다.

당신은 진정으로 변화와 성장을 바라는가.



절망이란 어둠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희망이란 빛을 찾아야 한다.

빛을 찾는 마음부터 가져야 나아갈 방향을 잡을 수 있다.

어둠에 길들여져서 빛을 피한다면 희망은 없다.

쥐구멍에 볕이 들 때 반길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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