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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Jun 23. 2019

경계를 만드는 것

분별심

박쥐는 쥐일까 새일까?

개인주의와 전체주의 가운데 더 좋은 것은?

엄마가 좋을까 아빠가 좋을까?

이쪽저쪽을 나누고 가르는 이유가 뭘까.



생존하려면 자극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위험한 자극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진화과정에서 사물을 분별하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분별력을 갖지 못하면 생존에 위협을 받았다.


사물에는 항상 양면이 있는 법이다.

분별하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하지 않으면 좋을 분별도 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하는 것처럼.


분별과 차별을 구분해보자.

분별은 사실을 바탕으로 차이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런데 차별은 가치를 평가해서 공평성을 잃는 것이다.

분별은 필요하지만 차별은 문제를 일으킨다.


백인과 흑인을 구분하는 것은 분별이다.

백인을 좋아하고 흑인을 싫어하는 것은 차별이다.

왼쪽과 오른쪽을 구분하는 것은 분별이다.

왼쪽은 싫어하고 오른쪽은 좋아하는 것은 차별이다.


차별 짓는 순간에 마음은 출렁인다.

에너지가 한쪽으로 흐르면서 갈등이 생긴다.

함께 하지 못하고 서로 겨루고 다투는 가운데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진다.

고통과 괴로움이 세상을 뒤덮는다.


생존에 위협을 주는 자극을 알아차리기 위해 분별력이 생겼다.

분별력에 평가가 더해지면서 차별의식이 생겼다.

차별의식이 경계를 만들면서 갈등과 혼란이 생겼다.

평화가 깨졌다.


무엇이든 나누고 갈라서 보는 것이 분별심이다.

이해득실을 나누고 아군과 적군을 가른다.

온갖 편견과 선입견을 굳게 해서 벽을 쌓는다.

갈라진 세상은 괴롭다.


인종차별, 성차별, 계급 차별...

온갖 차별은 경계를 가르는 차별의식에서 나온다.

차별의식에 깔려 있는 것은 두려움이나 분노이다.

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두려움이나 분노에 휩싸여 착각에 사로잡힌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판단력을 회복해서 사물을 바로 볼 때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차이를 차이로 보는 것은 분별력이다.

차별 짓는 마음에 휩싸이는 것은 분별심이다.

분별심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필요한 분별력을 갖출 수 있다.



솥뚜껑을 보고 놀라는 것은 착각이다.

자라를 보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야 솥뚜껑에 놀라지 않는다.

경계를 만들고 차별하는 마음에 갇히면 맞서고 다투며 갈등하게 된다.

경계를 허물고 있는 그대로 보려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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