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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Jul 19. 2019

주제 파악과 한계의식

탈고정화

"네 주제를 알아야지."

주제넘게 나서지 말고 분수를 지키라고 한다.

나설 때 나서고 빠질 때 빠질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분수나 주제가 정해져 있을까.


"가만히 있으라."

배가 가라앉는데 가만히 있으라고 했단다.

말을 들은 사람들은 다 죽었다.

주제를 알아 분수를 지켰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정상이라면 주제를 알아 분수를 지키는 것이 옳다.

너도 나도 다 나서면 질서가 깨지고 혼란에 빠진다.

그래서 본분이라는 것이 있다.

본분을 지켜야 조화와 균형이 잡힐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맥락이다.

지켜야 할 분수가 정해지는 맥락이 중요하다.

누군가 자신의 본분을 지키지 못할 때 이미 조화는 깨어진다.

그래서 비상시에는 본분도 달라진다.

선생은 가르치고 학생은 배우는 것이 각자의 본분이다.

그런데 만약 선생이 잘못 가르치면?

학생은 배우는 것이 분수에 맞으니 가르치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때는 학생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오히려 본분을 다하는 것이 된다.

상관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부하의 본분이다.

그런데 반역을 하는 상관의 지시를 그대로 따라야 할까?

대의에 어긋나는 상관의 명령은 거부하는 것이 옳다.

이렇게 맥락에 따라 본분은 달라진다.

자신의 삶을 주인으로 살고자 할 때 과연 본분은 무엇일까.

주인으로서 본분을 지키는 것은 권리이자 의무이다.

자기 주제를 안다고 해서 굳이 위축될 이유가 없다.

당당한 태도는 주인으로서 가져야 할 본분이다.

스스로 한계를 정해놓고 '나는 내 주제를 알고 있어.'라면서 위축되는 모습은 어떤가.

비겁한 변명일 수도 있다.

자신의 위치나 역할을 고정화시켜놓고 회피하면서 마땅히 할 일을 외면한다.

이런 겁쟁이가 많은 사회는 모순과 부조리가 판을 치게 된다.


자신의 본분을 한정하지 말자.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당당하고 떳떳하게 사는 것은 기본권리이다.

남의 인생을 지배하고 간섭하는 것은 부당한 폭력이다.

스스로 역할을 고정화해서 찌그러드는 것은 어리석은 자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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