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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Aug 14. 2019

평범과 비범 사이에서

자아상

"저도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자신이 평범한 줄 모르는 사람의 말이다.

"평범한 것은 싫어요."

평범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의 말이다.

당신은 비범한가 평범한가?



비범한 재능!

평범한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이다.

그런데 비범한 성취를 보이는 사람들은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한다.

그냥 '남이 떡이 커 보이는' 현상일까.


비범이란 평범하지 않다는 뜻이다.

통계로 보면 평범한 사람이 다수일 수밖에 없다.

보통 흔히 볼 수 있는 것에 평범하다는 이름을 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범하려면 소수가 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소수가 되면 외롭기 쉽다.

정상에 오른 사람은 고독하다.

경쟁할 만한 존재가 없으면 허무감마저 느낀다.

비범한 사람의 숙명이라고 할까.


어릴 때부터 내가 비범한 지 평범한지 관심이 많았다.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비범하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

'비범하게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 했다.

평범함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으니까.


지금 와서 돌아보면 비범하기를 바랐던 것이 일종의 보상심리였던 것 같다.

부유하지 못해서 먹고 싶은 것도 마음껏 못 먹고 공납금을 제때 내지 못해 창피하기도 했다.

남들보다 못한 부분을 보상할만한 비범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뭘 하더라도 악착같이 했다.


열심히 하니까 보통 이상의 능력을 보일 수 있었다.

남들 눈에는 비범해 보였을지 몰라도 나 자신은 평범의 범주에 있었다.

마라톤 우승을 했을 때도 남들보다 죽어라고 했기 때문이지 비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능력은 평범한데 남다르게 의지를 가졌기 때문이라 판단한 것이다.


사실 비범과 평범은 무 자르듯 뚜렷하게 갈리지 않는다.

어떤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평범과 비범이 결정된다.

자신을 평범하다고 여기는 비범한 사람과 자신이 평범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평범한 사람도 있다.

만족하거나 불만족하는 것은 사실 비범-평범과 관련이 없다.


일등만 알아주는 세상에서는 평범함이 곧 실패가 된다.

일등 말고는 다 실패한 사람이다.

비범함을 기준으로 삼아버리면 불만과 좌절이 널리 퍼진다.

평범함의 가치를 온전하게 알아줄 때 일상의 만족과 여유가 자리 잡는다.



8:2의 법칙을 보자.

2가 존재하려면 8이 있어야 한다.

비범함이 있으려면 평범이 받쳐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평범과 비범을 두고 갈등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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