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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Aug 16. 2019

집단 두려움을 떨치고

직면하는 용기

'군중심리'

군중 속에 있을 때 드는 마음이다.

마치 집단 최면이라도 걸린 것처럼 휩쓸린다.

순간 자기를 잃는다.



옛날 통성기도를 해 본 적이 있다.

집단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기도라는 걸 한다.

여기저기서 울부짖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집단에 동화되지 않았던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큰 소리로 엉엉 울면서 탄식하고 후회하는 집단 분위기가 나를 압박했다.

나도 무언가 쏟아내어야만 할 것 같은 압력이 심장을 조여 왔다.

그런데 나는 쏟아낼 만한 것이 없었다.

다시는 참여하지 않았다.


당시에 내 눈에 비친 그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군중심리의 위력을 실감한 첫 경험이었다.

내 정신줄을 놓아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이 감당하기 힘들었다.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그들처럼 할 수 없었다.


다른 분위기에서 군중심리에 동화된 적은 있었다.

대학생일 때 모교가 축구대회 결승에 올라 응원을 하러 갔다.

지금 승부는 기억나지 않지만 경기가 끝나고 나서 보니 목이 쉬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고함을 질러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목적을 가지고 모이면 강력한 무형의 에너지가 형성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 에너지의 장은 개개인한테 큰 영향력을 가진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그 무리에 속해 있으면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린다.

마치 홍수에 휩쓸리는 것처럼 자신을 지탱하기 어렵다.


깊이 뇌리에 박힌 의식은 좀처럼 바뀌기 어렵다.

더구나 집단 전체가 공유하는 집단 무의식은 거의 절대적인 힘을 갖는다.

집단 무의식에 반하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도 죽음을 불사하는 용기를 내어야 할 정도이다.

뚜렷한 확신을 갖지 않고서는 집단의 압력을 견뎌낼 수 없다.


일제 36년은 우리 민족에게 커다란 시련이었다.

해방이 되었다고 하지만 지배를 당한 후유증은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일본 제국주의를 싫어하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두려움을 갖는다.

친일파나 토착 왜구들이 기득권을 그대로 가지게 된 현실에서 그 두려움을 벗긴 어렵다.


광복절이란 '빛을 다시 찾은 날'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정말로 다시 빛을 찾았을까?

정치, 사회, 종교, 교육, 언론계 어디를 보더라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진정한 광복을 위해 아직도 할 일이 너무 많다.



집단 두려움을 떨쳐야 한다.

일제가 심어놓은 노예 의식이란 최면을 깨어야 한다.

용기를 내어 자신을 직면해보자.

우리는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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