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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Dec 13. 2019

장애를 다룬 영화 '블랙'

소통

영화 '블랙'의 주인공은 보지도 듣지도 못한다.

부유한 집에 태어났으나 장애를 갖고 있다.

깜깜함에 갇혀 살다가 좋은 교사를 만나 세상과 소통하게 된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세상은 어떨까.

(12월 13일 참나원 방송)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열린 감각은 촉감이었다.

어둠 속에서 촉감을 의지해 경험해가는 세상이 어땠을까.

감각에서 시각과 청각이 차지하는 비중이 구 할이 넘는다고 한다.

아주 흐릿한 빛으로 길을 찾는 셈이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주인공은 일반 대학교를 졸업한다.

세상과 소통하는 데 성공했다는 뜻이다.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벽을 넘은 것이다.

주인공은 "선생님은 불가능은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어요."라고 말한다.


몸에 장애가 없는 사람들을 정상인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상인과 장애인이라 하면 장애를 비정상으로 보는 느낌이 있다.

그래서 인권 차원에서 정상인이란 말 대신에 비장애인이라는 말을 쓴다.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마음이다.


멀쩡한 오감을 가지고 세상과 소통하지 못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장애가 아닐까.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

과연 이것이 정상 또는 비장애일까?


우리는 어쩌면 삶의 한 지점에서 성장을 멈추는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이유로 외면하는 것들이 있지 않은가.

자신의 감각과 의식을 열어 두지 않고 닫아 버린다.

마음에 벽을 쌓는다.


장애란 어려움이다.

벽이 가로막으면 드나드는데 장애가 된다.

마음에 벽을 쌓는 순간 장애를 가진 것이다.

단순히 몸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체험을 의식을 성장시키는 계기로 삼지 못하는 것은 장애다.

장애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장애를 만드는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도 개구리인 것은 맞다.

하지만 그는 장애에 갇힌 개구리다.


독선이나 아집에 빠진 사람은 계속 장애를 만든다.

그렇게 만든 장애에 갇혀 어둠의 삶을 사는 셈이다.

장애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벽을 허물어야 한다.

먼저 장애를 스스로 인정해야 넘어설 마음을 낼 수 있다.



몸과 마음이 다 건강한 삶이 정상이다.

몸이건 마음이건 장애가 있으면 힘들다.

무지의 어둠보다 지혜의 빛을 찾을 일이다.

소통이 빛을 찾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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