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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Jan 24. 2020

영화 '스틸 엘리스'로 보는 죽음

존재의 본질

'잘 죽는 것'

어떤 죽음이 좋을까.

영화 속 주인공은 치매에 걸린다.

삶이 달라진다.

(1월 24일 참나원 방송)



엘리스는 유명한 언어학자다.

성공한 전문직 여성이다.

잘 나가던 그녀가 치매에 걸린다.

두려움에 휩싸인다.


사라져 가는 기억으로 곤경에 빠진다.

하지만 결국 받아들이고 적응한다.

총기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준다.


능력을 잃어가는 엘리스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가족이 있다.

특히 막내딸은 엄마를 그대로 공감한다.

엄마의 상태가 어떻든 상관이 없다.

그야말로 '여전히 엘리스' 자체다.


비극적이라 할 만한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의식은 멀쩡한데 몸이 굳어버리는 파킨슨씨병.

몸은 멀쩡한데 의식이 죽어버리는 치매.

죽는 그날까지 몸과 마음이 건강하길 바라지 않는가.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앞두고 오히려 삶의 소중함을 느낀다.

곧 죽는다고 생각하면 눈에 밟히는 것들이 보인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드러난다.

그래서 죽음에 저항한다.


치매는 뇌세포가 죽어가는 현상이다.

일부가 죽는 것이다.

숨이 끊어지면 죽음이라 한다.

죽음은 이별이다.


의식은 어떨까.

잠만 자더라도 의식은 의식되지 않는다.

의식되지 않는 순간에도 생명현상은 지속된다.

그래서 잠재의식이란 개념을 쓴다.


생시에 경험하는 죽음이 잠일 지도 모르겠다.

삶과 죽음을 인식하는 것이 의식이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진짜 죽음이란 무엇일까.

죽더라도 '스틸 ㅇㅇㅇ'이 있을까.



과연 무엇이 '나'일까.

웃고 울고 하면서도 모른다.

어쩌면 정하기 나름일 수도 있다.

무엇을 '나'로 삼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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