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
"빨간 우산 노란 우산 찢어진 우산 이마를 마주대고 걸어갑니다."
어릴 때 많이 들었던 동요 한 구절이다.
왜 찢어진 우산이 있을까 궁금했다.
아마도 이 가사를 쓰신 분은 따뜻한 가슴을 지니신 것 같다.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빨간 우산 노란 우산 찢어진 우산
좁다란 골목길에 우산 셋이서
이마를 마주대고 걸어갑니다.
내가 기억하는 동요 "찢어진 우산" 가사다.
노래는 경쾌하고 가볍다.
장면을 떠올리면 절로 웃음을 짓게 된다.
해맑은 개구쟁이들의 모습에 마음이 열리는 것이다.
문맥상 빨간 우산 노란 우산은 왠지 새것일 듯싶다.
그런데 찢어진 우산이 등장한다.
낡고 오래된 우산일 것이다.
이 셋이 어울리는 모습이다.
적어도 이 노래가 한창 불릴 당시에 우리 정서가 그랬다.
개인주의보다 더불어 함께 사는 공동체 문화였다.
그래서인지 새 우산과 찢어진 헌 우산이 어울리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떨까.
물질만능의 가치관이 사회를 뒤덮고 있는 듯하다.
아이들의 꿈이 '건물주'란다.
일 안 해도 집세를 받아 풍족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돈 많이 벌고 싶다'고 한다.
부유한 집 아이들이 가난한 집 아이들을 차별하는 이야기가 가끔 들려온다.
대세가 그렇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아직도 함께 더불어 사는 공동체 의식이 더 크다고 믿고 싶다.
그래도 이런 소식을 들으면 가슴이 싸하다.
세상이 변해도 아름다운 인심은 그대로였으면 좋겠다.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어도 순수한 동심은 잘 지녔으면 좋겠다.
이런 바람이 그냥 하릴없는 넋두리처럼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문제는 실천일 것이다.
우리 마음에는 소중한 보물이 많다.
사랑, 기쁨, 배려, 감사, 호기심 등등.
이런 보물들을 앗아가는 것이 무엇인가.
비 오는 날 찢어진 우산을 생각한다.

이마를 마주대고 걸어갑니다.
응원과 동참.
힘든 시기일수록 필요한 마음이다.
공생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