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 감수
"마스크를 쓰지 않고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 위험하다."
코로나 사태가 길어진다.
일상이 불편해진 것은 오래되었다.
언제까지 이런 불편을 감수해야 할까.
(8월 9일 참나원 팟캐스트 방송)

코로나가 발생했을 때 이럴 줄 몰랐다.
너무 유난 떠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잠시 지나가는 소나기 같을 거라 믿고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코로나를 우습게 생각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세계 여러 나라가 대처에 소홀했다.
결국 코로나가 지구를 휩쓸고 있다.
우리나라는 방역 모범국이 되었다.
환자 발생이 제로가 된 날 긴장이 풀렸다.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나왔다.
방역 당국은 경고했지만 귀담아듣지 않았다.
다시 환자가 늘었다.
조금의 불편도 감수하고 싶지 않은 심리다.
집안에만 갇혀 있으니 너무 답답하다.
야외에서는 안전할 것이라 믿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 일상을 즐기려 했다.
아직 코로나 사태는 진행 중이다.
어쩌면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는 것이 일상화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코로나가 지나가더라도 안심하기 어렵다.
제2 제3의 코로나가 닥칠 위험성이 충분하다.
인류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지구를 괴롭힌 지 오래되었다.
기후 위기는 인간이 자초한 재앙이다.
바이러스의 위협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편하고자 했던 행위들을 돌아보아야겠다.
코로나가 현실로 강력한 위협이 되고 있는데도 우리는 편하고자 한다.
마스크를 써야 안전하다는데 듣지 않는다.
'설마' 하는 심정으로 그냥 편하게 지내려 한다.
하지만 방심의 대가는 크다.
불편함을 감수하는 쪽으로 마음을 내어 보면 어떨까.
산소가 적은 곳에서 경기를 하기 위해 일부러 마스크를 쓰고 훈련하는 것처럼 말이다.
조그만 불편도 견디지 못하는 조급함을 이겨내려는 훈련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을 바꾸면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는 것이 좋은 훈련이 될 수도 있다.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면 좋은 경우가 많다.
질서를 지키거나 양보하는 것도 사실 불편을 감수하는 행위다.
불편함을 견뎌내는 힘이 강하면 성취 가능성도 커진다.
이참에 마스크로 내면 강화훈련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