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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Dec 15. 2018

다정도 병인 양 하여

상담자의 감정 조절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라 한다.

그만큼 감정이 인생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뜻이다.

우리말에 '정(情) 든다'는 말이 있다.

미운정이든 고운정이든 정들면 초연하기 어렵다.

"다정도 병인 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라는 시조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상담을 할 때 보통 시간을 예약하고 정해진 시간을 지킨다.

그런데 어떤 내담자들은 습관적으로 상담 시간을 어기곤 한다.

지각은 저항과 연관되기도 하지만 단순히 내담자의 습관일 경우도 있다.

늦은 시간만큼 내담자가 시간을 손해 보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웬만하면 정해진 시간을 채워주고 싶은 것이 상담자의 마음이다.

그래서 늦게 왔을 때 다음 일정이 없으면 그만큼 시간을 채워서 상담을 해 준다.


물론 내담자가 지각하거나 게으른 행동 습관이 문제가 되어 있을 경우에는 습관을 고치기 위해서라도 불이익을 감수하게 해야 하기도 한다.

습관적인 지각이 계속되면 그냥 편의를 봐줄 것이 아니라 지각을 주제로 다루는 것이 좋다.

이 과정에서 내담자의 문제가 해결되기도 한다.

그냥 인심 좋게 내담자의 편의를 무한으로 봐주는 것은 고려해 볼 만한 일이다.


더 미묘한 문제는 지각이 아니라 상담시간을 끄는 현상이다.

상담을 마칠 때쯤 되어서야 중요하고 심각한 이야기를 꺼내는 내담자가 있다.

시간이 다 되었어도 냉철하게 판단해서 끝내야 하겠지만, 격한 감정에 휩싸여 있는 내담자한테 다음 시간에 오라고 그냥 보내기는 인간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상담이 지연되어 시간을 넘기고 만다.


상담이 끝날 때가 다 되어서야 중요한 이야기를 꺼내는 데는 내담자의 불안심리가 깔려 있는 경우가 많다.

상담에서 다루고 싶지만 마음에 부담이 되어서 선뜻 꺼내지 못하다가 상담 시간이 끝나갈 때 쫓기듯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다.

마감 시간에 쫓겨서야 원고를 내는 작가의 심정처럼 막상 중요한 영역을 최대한 뒤로 미루는 현상이라 하겠다.

학생이 공부를 하려고 책상에 앉았는데 바로 시작하지 못하고 시간을 보내다가 공부를 시작하는 것도 같은 심리라 보면 되겠다.


아무튼 자신의 일에 직면하는 데는 어느 정도의 부담이 따르기 마련이기 때문에 당장 시작하지 못하고 뒤로 미루는 현상이 생긴다.

상담을 마칠 때가 되어서야 중요한 이야기를 꺼내는 내담자의 심리도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자꾸 되풀이되면서 개선되지 않는다면 상담을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시간을 앞으로 당겨보는 것도 한 가지 대응책이 될 수 있다.

보통 5분에서 10분 정도를 남기고 상담을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시간을 갖는데, 아예 30분 정도가 남았을 때 정리를 시도하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게끔 유도하는 것이다.

내담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거나 미루는 낌새가 보이면 바로 직면으로 들어가서 멍석을 펼치는 것이다.


상담자도 내담자한테 좋은 인상을 주고 호감을 얻고 싶어 할 수 있다.

상담을 위해서 필요한 만큼의 호감과 신뢰감을 넘어서 인간적인 욕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다정도 병인 양 하여 필요한 대응을 적절하게 하지 못하는 인간적인 갈등에 빠지는 셈이다.

그래서 상담자는 항상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해야 한다.

자비롭고 인정 많은 넉넉한 인심을 갖추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때에 따라서는 냉정하게 끊을 줄도 알아야 한다.



상담은 목적지향적인 활동이다.

내담자와 인간적인 정감을 나누는 낭만에 취해서는 곤란하다.

상담자는 항상 내담자의 상담 목적을 염두에 두고 스스로 감정도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내담자한테 인간적인 신뢰나 호감을 얻는 것보다도 내담자한테 실제로 도움이 되는 관계를 맺으려 해야 한다.

다정도 병인 양 하여 잠 못 드는 낭만은 그냥 공상으로 즐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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