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기연 Dec 16. 2018

상담으로 할 수 없는 것들

심리상담의 영역

상담은 만병통치약이 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만병통치약이 없듯이 상담도 제한 없이 적용되지는 않는다.

상담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할 수 없는 것에 매달리기보다는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아주 어린아이들은 상담이 되지 않는다.

아직 자아가 형성되지 않은 영유아의 경우에는 자신을 살피고 고칠 것은 고친다는 개념 자체가 무의미하다.

상담을 할 수 있으려면 어느 정도 인지가 발달해야 한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상담다운 상담을 할 수 있다고 하겠다.

아직 미성숙한 아이들은 상담 대신 놀이치료나 다른 특수치료를 한다.


나이가 든 사람이라 하더라도 상담을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망상이 심해서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상담이 의미가 없다.

실제로 조현병이나 심한 망상 환자들과 상담을 할 경우 한 시간 상담으로도 상담자는 완전히 진이 빠지곤 한다.

힘이 들더라도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면 의미가 있겠으나 정신적으로 심한 혼란에 빠진 사람들은 언어적인 소통 자체가 의미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약물치료를 급히 받아야 할 정도의 환자라면 심리상담을 곧바로 적용할 수 없다.


상담을 받으려는 자발적인 의지가 없는 사람을 상담하는 것도 의미가 없는 허무한 행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의뢰되어 온 내담자라 하더라도 상담 구조화나 설득을 통해 상담을 받고자 하는 의지를 낼 수 있다면 상담은 효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체벌의 의미나 의무적으로 상담을 받게 되는 상황에서 내담자가 자발적인 상담 의지를 내기는 쉽지 않다.

의뢰되어 온 비자발적 내담자는 몇 번 상담을 해 보고 의지가 생기지 않을 때 그만두는 것이 현명하다.


상담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아주 묘하게도 상담 효과가 전혀 없거나 아예 역효과가 나는 경우도 있다.

상담을 받는 목적이 순수하지 못한 경우인데, YAVIS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YAVIS란 젊고(young) 매력적이며(attractive) 유창하고(verbative) 지적(intellectual)이며 깔끔한(smart) 사람을 말한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이런 사람이 상담도 잘 되고 상담 효과도 좋아야 할 것 같은데 왜 상담이 별 의미가 없게 될까?


모든 YAVIS가 상담 효과가 없지는 않다.

진지하고 절실하게 상담을 받으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으면 이들의 이런 성향은 오히려 좋은 자원이 되어 상담 효과를 확실히 볼 수 있다.

문제는 의도이다.

자신이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불순한(?) 의도로 상담을 하기 때문에 상담 효과가 나지 않는다.


이들은 상담자의 어떤 질문에도 막힘 없이 유창하게 대답을 한다.

상당히 심오한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자신의 증상이나 문제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이야기하곤 한다.

상담자의 조언이나 안내에도 잘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실제로 변화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왜?


이들은 상담을 통해서 자신이 진정으로 변하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어떤 직면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부분 긍정과 부분 부정으로 애매한 태도를 취한다.

지지나 격려도 별 소용이 없다.

지지나 격려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고 상담자의 의도를 넘겨짚으며 오히려 상담자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상담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는 것 같지만 내담자는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어떤 이야기도 듣지 않는다.


마음을 내지 않는 사람을 상담할 수는 없다.

만약에 진정으로 상담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사람과 상담을 오래 지속한다면 이는 상담자의 직무유기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내담자가 자기 합리화를 하거나 자신의 증상을 무기 삼아 변화를 거부하는 것을 상담으로 강화할 위험도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효과가 없는 것이 아니라 심각한 역효과를 내고 있는 셈이다.


의도를 순수하게 갖지 않으면 상담이 효과가 없음을 분명히 밝히고 내담자가 정말로 진지하게 태도를 바꿀 수 있게끔 직면해야 한다.

상담자를 평가하면서 마치 쇼핑을 하듯 이 상담자 저 상담자를 찾는 사람들은 정말 고약하다.

이들은 자신의 내면에 전혀 관심이 없다.

자신이 얼마나 유능하고 유명한 상담자와 상담을 했는가 하는 경력(?)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들은 자기가 만난 상담자들을 과소평가한다.

결국 자신은 누구도 상담해 줄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상담으로 사람의 자유의지를 바꿀 수는 없다.

내담자가 가지고 있는 의도와 보이는 태도가 어떨 결과를 불러올 것인지 알려주는 선에서 내담자가 상담을 진지하게 할 수 있게끔 안내할 수 있을 뿐이다.

상담을 할 의지가 없거나 의사소통 능력이 심각하게 부족하거나 정신적으로 혼란이 심한 경우에는 상담을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상담자가 냉철하고 단호하면서도 친절하게 내담자한테 상담의 한계를 알려주어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정도 병인 양 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