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박과 저항
"공부를 강요하는 부모와 살고 싶지 않아요."
한 여학생의 고민이다.
오빠는 적극 저항해서 과잉행동장애 판정을 받고 벗어났다.
하지만 사연자는 자신을 망치면서까지 반항할 생각은 없다.
(8월 12일 참나원 팟캐스트 방송)

사연자는 '공부가 인생의 전부냐'고 묻는다.
물론 아니다.
대학입시가 인생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어찌 보면 평생 공부하면서 산다고 할 수 있다.
자식을 공부시키려는 부모를 탓할 수는 없다.
부모의 마음에 공부를 하지 못한 한이 있다면 더 간절해진다.
간절하면 이루어질까.
자신의 일이라면 그럴 수 있지만 자식은 그렇게 안 된다.
사연자는 공부를 강요받지 않으면 공부할 마음이 날 것이라 한다.
공부하라고 강요받을수록 하기가 싫어진단다.
그래서 하루 종일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저항한다.
공부가 하기 싫어서 핑계 대는 것은 아니란다.
구속받지 않으려는 것은 생명의 속성이다.
자유롭고 싶은 것이다.
스스로 판단해서 선택했을 때 자발성이 나온다.
시켜서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사연자는 전교 30등 안에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부모는 1등을 하라며 재촉한다.
무리라고 말씀드려보았지만 소용이 없다.
그래서 반항을 했다.
오빠는 격렬하게 저항해서 결국 부모가 포기했다.
하지만 사연자는 오빠처럼 자신을 망쳐가며 반항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오빠는 곧 성인이 되면 집을 나간다고 한다.
사연자는 막막하고 답답하기만 하다.
반항 대신에 자기주장을 해보면 어떨까.
강요 대신에 대화를 해 보면 어떨까.
해법이 없지는 않다.
다만 고집을 내려놓지 못해서 안 보일 뿐이다.
"제가 알아서 효과적으로 공부를 할 테니까 지켜봐 주세요."
"공부할 때만 이뻐하지 말고 쉬거나 놀 때도 이뻐해 주세요."
"부모님의 바라시는 것은 알지만 제 인생은 제가 살아야 하잖아요."
이런 식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할 수 있게끔 노력하는 것이 진짜 공부다.

사람은 감동을 해야 마음이 움직인다.
감동은 마음이 통할 때 일어난다.
마음이 통하려면 나를 비우고 상대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강요나 명령이나 지시는 불통을 부르는 확실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