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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Dec 19. 2018

욕망과 두려움

양가감정

"저는 공덕천이라 합니다. 제가 있는 곳에는 재앙과 화가 사라지고 기쁨과 즐거움이 넘칩니다. 저를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잠시 후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

"저는 흑암천이라 합니다. 제가 있는 곳에는 기쁨이나 즐거움은 없고 슬픔과 걱정과 온갖 재앙이 닥쳐서 늘 괴롭습니다. 들어가겠습니다."

"당신은 내가 받아들이지 않겠소. 가시오."

"먼저 들어간 공덕천은 저와 쌍둥이 언니입니다. 저희는 늘 함께 있습니다. 언니를 받아들이려면 저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마음은 당기는 마음밀치는 마음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좋아서 끌어들이려고 하는 마음을 탐심 또는 욕심이라 한다.

반대로 싫어서 밀쳐내려고 하는 마음을 진심 또는 성냄이라 한다.

탐심과 진심을 왔다 갔다 하면서 중심을 잡지 못하는 마음을 어리석은 마음(치심)이라 해서 이 세 가지가 불행을 일으킨다.

탐심과 진심을 오가지 않고 진실을 바로 보면서 자신의 자유의지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것을 지혜로운 마음이라 할 수 있다.


공덕천과 흑암천 이야기는 인간의 마음이 작용하는 원리를 비유한 것이다.

재앙과 복은 늘 함께 한다.

재앙이기만 한 것이나 복이기만 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재앙의 다른 면이 복이고, 복의 다른 면이 재앙이다.

예를 들어서 복권에 당첨되는 것을 복이라 한다면, 복권에 당첨되어서 생긴 재물로 다툼이 생기는 것은 재앙이다.

재앙과 복은 하나의 양면이다.


같은 대상을 두고 당기는 마음과 밀치는 마음이 공존한다.

맛있는 음식이 있다고 하자.

배가 고플 때는 먹고 싶어서 당기는 마음이 일어난다.

배가 부르면 먹고 싶지 않아서 밀치는 마음이 일어난다.

모두가 언제나 좋아하는 대상이 있을까?

당기는 마음과 밀치는 마음은 교대로 일어나면서 공존하고 있다.

이를 양가감정이라 부른다.


상담을 하러 오는 내담자는 상담을 좋아할까?

내담자가 상담에 임하는 마음도 양가감정이기 마련이다.

마음이 편치 않아서 도움을 받고자 상담을 찾는다.

상담을 하면서 문제가 해결되고 마음이 편해지면서 상담을 마친다.

내담자는 상담을 좋아한 것인가?

필요해서 했을 뿐 상담 자체를 좋아했다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욕망이란 것은 어떨까?

요즘은 돈을 많이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돈을 욕망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돈을 좋아할까?

왜 돈을 욕망하게 되었을까?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돈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임을 알 수 있다.

돈이란 것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이지 그 자체가 원하는 대상은 아니란 말이다.


돈을 가지고 싶어 하는 마음의 이면에는 어떤 마음이 자리 잡고 있을까?

돈이 없어서 겪을 곤란을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

욕망과 두려움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욕망하는 순간 두려움도 일어난다.

욕망과 두려움이 교차하면서 당기는 마음과 밀치는 마음이 교대로 일어난다.


양가감정에 휩쓸리면 어떤 판단이나 선택도 시원스럽게 할 수 없다.

애착을 가지면서 증오도 함께 생기기 때문에 좋아하는 동안에 미움도 그림자처럼 함께 한다.

애증이라 하는 양가감정으로 얼마나 많은 갈등이 생기는가.

서양 격언에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는 말이 있다.

무엇을 얻고자 하면 고통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고통스러움을 견디고 애써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내담자가 자신이 겪는 고통을 이야기할 때 그 속에서 내담자가 원하는 것을 찾아낼 수 있다.

내담자가 욕망하는 것과 내담자가 받고 있는 괴로움이 어떻게 연관되는지 밝혀내어 알려주면 내담자는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있게 된다.

공덕천과 흑암천을 둘 다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둘 다 내쫓을 것인가는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한쪽만 받아들이고 다른 쪽을 내쫓을 수는 없다.



상담자가 선택을 대신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담자가 스스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다만 상담자는 욕망과 두려움이 하나임을 알려주고 그들의 인과관계를 내담자한테 설명해 줄 수 있을 뿐이다.

내담자의 문제를 해결해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상담자가 느낄 이유는 없다.

상담자는 그저 거울처럼 양면을 다 비추어주는 것이다.

욕망하려면 두려움도 감수해야 하고, 두렵지 않고 싶으면 욕망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이 선택은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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