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성
"자동차 보닛 안에서 길고양이 새끼 3마리가 타 죽었는데 배상금을 이천만 원 요구합니다."
평소처럼 차에 시동을 걸다가 황당한 일을 겪은 한 청년의 사연이다.
날씨가 추워지며 길고양이들이 보닛 안으로 들어와 있다가 사고가 난 것이다.
그런데 정작 황당한 일은 바로 그다음에 벌어졌다.
(12월 13일 참나원 팟캐스트 방송)

사연자는 시동을 걸다가 깜짝 놀랐다.
시동을 걸자마자 고양이 울음소리와 무언가 타는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시동을 끄고 보닛을 열어보니 이미 고양이들이 죽어 있었다.
한 아주머니가 비명을 지르며 울더니 "살인자"라 외쳤다.
그 아주머니는 그 길고양이들을 돌봐주던 캣맘이었다.
분노한 그녀는 사연자한테 이름과 연락처를 물었다.
그녀의 슬픔과 분노를 이해할 수 있었기에 별생각 없이 알려주었다.
그런데 동물보호 관련협회에 고발하겠다며 배상금을 요구해왔다.
한 마리당 500만 원씩 총 2000만 원을 배상하란다.
공식 사과문도 내라고 했다.
사연자는 이 일을 SNS에 올렸다.
많은 댓글이 달렸다.
댓글에는 배상을 해야 한다는 의견은 거의 없다.
오히려 차량 수리비를 청구하라는 의견도 있다.
이런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하는 중립적인 댓글도 발견된다.
전체적으로 캣맘의 과도한 요구에 분노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다.
겨울이 되면서 이런 사고가 종종 일어난다고 한다.
그래서 동물보호 관련협회에서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시동을 걸기 전에 차량을 두드리거나 뭄을 세게 여닫아서 도피할 시간을 주라고 한다.
어쩌면 널리 알려야 할 내용일 수도 있겠다.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는 일은 분명 안타까운 일이다.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명심하고 실천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이 사연에서 캣맘의 대응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녀의 입장에선 자녀를 잃은 충격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좋게 생각을 하려 해도 그녀의 행동에 수긍이 가지 않는다.
평소에 아끼며 돌보던 생명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을 수는 있다.
화가 나면 잠시 눈에 보이는 게 없을 정도로 흥분할 수도 있다.
자기 몫으로 500만 원을 요구한 것을 보면 고양이와 자신을 하나로 보았는지 모르겠다.
길고양이에 동정심을 가지고 보살피는 것은 생명을 아끼는 순수한 마음에서 나오는 행동일 것이다.
그런데 사고를 빌미로 거액의 배상금을 요구하는 것은 순수해 보이지 않는다.
사연자도 본의 아닌 가해에 놀랐고 충격을 받았다.
사연자도 위로받아야 하지 않을까.
작은 사고에도 최대의 보상을 받으려 하는 심리가 만연되어 있는 듯하다.
마음의 상처를 물질로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가.
이런 현상들이 물질만능주의에 찌든 모습으로 보여 씁쓸하다.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뜻하지 않은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마음에 충격을 받았을 때 무엇부터 해야 할까.
마음을 차분하게 살피려 애써야 하지 않을까.
욕심이나 분노의 노예가 되지는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