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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Jan 04. 2019

답은 정해졌으니 너는 대답해

답답한 이유

'답정너'가 판친다.

'답은 정해졌으니 너는 대답만 해'하는 일방통행을 답정너라 한단다.

서로 자기의 정답지를 상대한테 강요하다 보니 세상엔 온갖 답이 넘친다.

그래서 답답해진다.

답을 알면 시원하고 후련하다.

오답이 넘치면 그냥 답답할 뿐이다.



"솔직히 말해. 너 화났지?"

"아니야 화난 거 아니야."

"솔직하게 말하라니까. 화났잖아."

"아니라니까. 진짜 화 안 났다고."(언성을 높여서)

"거봐. 지금 화내잖아~."


소통이 필요한 시대에 소통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을 꼽으라면 '넘겨짚기'를 고르겠다.

마치 상대의 마음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제멋대로 생각해서 단정해버리는 것 말이다.

제멋대로 넘겨짚는데서 더 나아가 아예 상대의 반응을 자기 멋대로 정해놓고 유도신문하듯 몰고 가는 것은 조작 수사를 연상하게까지 한다.

이쯤 되면 동상이몽 수준이 아니다.

정신적인 폭력이고 범죄라고 할 수도 있다.


의심이 일어나면 그 의심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증상이 있다.

흔히 알고 있는 의처증이나 의부증 같은 것이 여기에 해당된다.

정신의학에서는 편집증이라고 부른다.

한마디로 하면 '망상에 빠져서 현실감각을 잃어버리는 증상'이다.

현실성 있는 판단을 하지 못하고 피해망상, 과대망상, 관계망상 등에 사로잡힌다.


이런 질환을 일으키는 사고방식이 바로 '답정너'이다.

합리성이나 현실성이 있는 근거도 전혀 없이 멋대로 넘겨짚어서 짐작한 것을 기정사실로 믿는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답답해진다.

열려 있는 자세로 상대를 존중하고 받아들이려는 자세를 찾아볼 수 없기에 철벽처럼 느껴진다.

이들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을 살펴보자.

이들은 자신이 겪은 괴로움에서 자신은 어쩔 수 없이 피해를 입은 피해자라고 믿는다.

어쩔 수 없이 피해를 입었다는 생각은 자신이 어떻게 해도 그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으며 피해를 준 가해자는 너무나 강력하고 악하기 때문에 늘 자신은 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망상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너무나 사악하고 강력한 적한테서 자신을 방어하고 보호하려고 과민한 반응을 하곤 한다.

결국 자신이 가진 피해의식 때문에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고 만다.


두려움에 휩싸여서 심하게 흔들리는 바람에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한 채 자기 생각에 빠져버리는 꼴이다.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아주 위험하고 불안정하며 적대적이기 십상이다.

침착하고 차분하게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여유를 갖지 못한다.

쫓기는 느낌이 강해서 마음은 쉽게 조급해진다.

결국 자기만의 답을 정해놓고 모든 것을 거기에 꿰어 맞춘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눌 때 서로를 존중하면서 마음을 열어두어야 원활한 소통이 가능하다.

그런데 각자 자기만의 답을 고집스럽게 가지고 있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답과 답이 서로 부딪힌다.

제대로 된 정답이라면 문제가 풀리면서 후련해지는 맛이 있다.

그런데 서로 다른 답이 함께 있으니 마음은 그야말로 답답하다.

답답한 상태에서 자기만의 답을 빼버리면 답이 하나만 남는다.

그러면 그 답이 맞는지 틀린 지 살펴볼 수 있게 된다.



섣불리 단정하지 않고 마음을 비워둔 상태에서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면 상대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들린다.

제멋대로 넘겨짚으면서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면 내 답과 상대의 담이 부딪히며 답답하고 깜깜해진다.

서로 일방통행을 하려고 하면 추돌사고를 피할 수 없다.

자기 답을 내세우지 않고 상대의 답을 잘 들어보려 마음을 먹는 순간 답답함에서 해방된다.

답답할 때는 자기 답부터 지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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