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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Jan 03. 2019

어중간한 것이 중도가 아니다

적정 수준

보수와 진보가 부딪힌다.

부딪힘이 싫어서 어중간한 입장을 가진다면 이것이 중도인가?

중도란 어중간한 길이 아니다.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면서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아야 중도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중도라면 보수도 되고 진보도 된다.

다만 고정되지 않을 뿐!



중도 무문(中道無門)이라 한다.

말 그대로 하면 중도에는 문이 없다는 뜻이다.

왜 중도에 문이 없을까?

중도는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따로 안과 밖이 없으니 문이 없을 수밖에.

먼저 중도가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자.


서울로 가려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

올바른 답을 얻으려면 현재 자신이 있는 곳부터 알아야 한다.

인천에서 간다면 동쪽으로 가면 되고, 강릉에서 출발한다면 서쪽으로 갈 일이다.

이를 올바로 이해한 사람이라면 수원에서 묻는 사람한테 동쪽도 서쪽도 아닌 북쪽이라 일러준다.

중도란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목적지로 가는 바른 길이 중도이다.

곧 중도는 정도(正道)이다.


이미 알고 있던 동쪽이나 서쪽이 아닌 북쪽이란 답을 얻어내는 것은 언뜻 보기에 창조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중도를 안다면 이것이 너무나 당연한 대답임을 알 수 있다.

중도는 정해져서 고정된 길이 아니다.

목적지와 현재 위치가 정해지면 중도도 정해진다.

정해져 있지 않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간다고 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바른 길인 중도를 찾기 위해서는 목표와 현재 자신의 상황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길을 떠난다면 헤맬 수밖에 없다.

어디로 가는 줄은 알더라도 현재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면 길을 잘못 들기 쉽다.

열심히 살아왔는데 행복하지 않다면 이는 중도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목표를 잘못 잡았든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든지.


콩 심은 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치이다.

콩을 심고 팥을 얻으려 한다거나 팥을 심고서 콩이 나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다.

행동은 이전과 같이 하면서 결과가 달라지기를 바라는 것이 정상일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해보아도 결과는 '역시나~'가 되고 만다.

살면서 맞닥뜨리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중도를 찾아야 한다.


상담을 하다 보면 내담자가 현재 하고 있는 행동과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욕구가 상반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아이가 능동적으로 자기 일을 신나게 하기를 바라면서도 감시와 잔소리를 멈추지 못하는 부모.

애인이 자기한테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주기를 바라면서도 막상 애인이 좋아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 사람.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 아이.

도움을 받기 위해서 상담을 찾았으면서도 깊은 속 이야기는 피하는 내담자.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바라는 것과 지금 하고 잇는 행동이 서로 엇갈리고 있다는 것이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서 일부러 시험을 망친 아이가 있었다.

자신이 공부를 잘해서 선생님들한테 칭찬을 들으니까 아이들이 자기를 멀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이의 의도와 다르게 다른 친구들이 이 아이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 아이는 배신감을 느끼고 세상을 미워하기 시작했다.

어디서 어긋난 것일까?


이 아이는 중도를 찾지 못했다.

자기가 멋대로 생각하고 자기 생각을 옳다고 믿으며 엉뚱하게 얽혀버렸다.

선생님들의 총애를 받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자기와 놀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생각은 아닐 것이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시기나 질투는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공부를 못하면 다른 아이들이 같이 놀아줄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알지 못하고 세상을 증오하게 된 것이 불행해지는 결정적 한방이 되고 말았다.


흑백논리에 빠지면 중도를 이해할 수 없다.

기껏해야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것' 쯤으로 생각할 뿐이다.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않거나 뚜렷한 의지를 갖지 않으면서 자신은 중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사실상 흑백논리에 빠져 있는 셈이다.

이것이나 저것 가운데 하나를 결정해야 하는데 결정을 못 해서 애매한 태도를 취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런 생각이 흑백논리이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군중심리가 흑백논리로 선택을 강요하는 면도 있다.



중도를 찾으려면 자신의 욕구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만약 수많은 욕구가 있다면 선택과 집중을 통해서 목표를 분명히 할 줄 알아야 하겠다.

그리고 현재 자신의 능력이나 여건들을 살핀다.

그러면 어떤 노력을 얼마나 해야 할지 답이 나온다.

목표에 이르는 정확한 길이 바로 중도이다.

욕구를 제대로 충족할 수 있는 실천 방법이 중도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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