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 공감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 내가 너라면 말이야~"
꼰대스러운 말이다.
가만히 들어보면 오류투성이이기 십상이다.
나쁜 의도는 아닐지라도 이렇게 말할 때 상대방은 이미 마음에 장벽을 치기 마련이다.
유사 공감은 의도하지 않은 폭력일 지 모른다.
나이가 들고 신체기능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끼게 될 때 자칫 여유를 잃기 쉽다.
젊음을 잃어가는 여러 징후에 초조해지면서 한창때를 생각하곤 한다.
이런 심리상태에서 젊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자기도 모르게 말이 많아진다.
심지어는 한 말을 되풀이하기도 하면서 온갖 당부와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듣는 사람이 싫어하는지도 모르고 자기 생각에 취해서 잔소리를 멈추지 못한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신체변화와 심리상태는 밀접하게 연관되어서 세월에 따라 변화한다.
어릴 때는 호기심도 많고 미래에 관심이 많다.
젊을 때는 현재의 삶을 치열하게 산다.
늙어서는 지난날 잘 나가던 때를 생각하며 산다.
자신의 경험을 상대한테 주입하고 싶어 하는 것은 노화현상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자신의 잣대를 타인에게 적용하면서 잔소리를 늘어놓는 사람을 누가 좋아할까?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중간에 말을 자르면서 자기 이야기만 하는 독선에 가득한 사람을 일러서 꼰대라고 한다.
꼰대가 자주 하는 말이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 또는 '내가 왕년에 말이야~' 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시작하는 말들을 가만 들어보면 나누던 이야기와 맥락이 전혀 맞지 않는 신세한탄이거나 허세 가득한 허풍이 대부분이다.
한이 많은 사람일수록 쏟아내고 싶은 말이 많아서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누지 못하고 몇 마디 말을 핑계 삼아 속풀이를 하는 것이다.
이런 속풀이를 일방통행으로 감수해야 하는 상황을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히는 것은 그냥 자기 속풀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라면 말이야~' 하고 어쭙잖은 충고를 하는 상황이다.
술에 취해서 하는 말은 일방통행이고 한풀이이고 어쭙잖은 충고인 경우가 많다.
이런 말들은 마음을 전달하는 말이 아니라 냄새나는 쓰레기일 뿐이다.
자신이 미처 소화하거나 해결하지 못한 경험이 한처럼 덩어리로 마음속에 남아있다가 어떤 상황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이 잔소리이고 일방통행식 충고이다.
상대의 이야기를 깊이 공감하면서 듣고 정말로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결 못한 한을 어떤 단어나 상황을 빌미로 쏟아내는 것이 온당한 일일까?
상대를 자기 마음대로 부리려고 의도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이렇게 쏟아지는 한풀이는 상대한테 소음공해일 수 있다.
만약에 상대방이 듣기 싫은 소리라도 억지로 들어야 하는 위치에 놓여 있다면 소음공해를 넘어서 심각한 폭력이 되기도 한다.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하는 것은 심각한 착각이다.
실제로 다른 경험인데 같다고 착각하면서 감정이입을 하는 것을 유사 공감이라고 한다.
상대의 입장이나 심정이 잘 이해되었다 하더라도 정말 공감이 된 것인지 자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내가 네 마음 알겠어. 아는데 말이야~' 하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네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이러이러하게 경험했던 것이 떠오르네"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고 올바르다.
이렇게 표현할 때 상대방은 거부감이나 저항감 없이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 세상을 이해하는 고유한 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함부로 안다고 하면 안 된다.
상대의 말을 들으면서 다 알아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심각한 착각이다.
얼마든지 다를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귀담아들으면서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려 애쓸 때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하는 진실한 교류가 가능해진다.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하는 생각이나 말은 깨끗하게 지워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