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의 감옥
"죄를 지었는데 들키지 않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시달려요."
강박증을 앓고 있다는 고1 학생의 고민이다.
관념의 감옥에 갇혀 헤어나지 못한다.
어떻게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3월 16일 참나원 팟캐스트 방송)
사연자는 강박증 약을 먹고 있다.
자신이 아무도 모르는 죄를 지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최근에는 누군가에게 아무도 모르게 수면유도제를 먹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아무도 모르게 수면유도제를 먹이는 것이 가능한지 묻는 사연을 올렸다.
상대가 모르게 수면유도제를 먹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사연자는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묻고 있다.
의문을 가지는 방식부터 문제가 있다고 하겠다.
자신이 빠져 있는 생각의 모순을 발견해내기 어려워 보인다.
누군가한테 죄를 지었는데 들키지 않았을 뿐이라는 생각을 왜 할까.
원죄의식이라는 개념과 연관될 수 있을 듯하다.
자신을 죄인이라고 내몰아야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죄책감에 시달리는 쪽이 책임의 무게보다 가볍다고 믿을지도 모른다.
현실의 책임을 감당하려면 어느 정도 부담이 된다.
그래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거나 책임을 질 수 없는 이유를 찾는다.
강박증도 책임감을 피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강박증이라는 증세를 핑계로 책임을 져야 할 현실에서 도망가는 것이다.
실수나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다.
결과에 책임지고 보상하는 것이 떳떳하다.
실수나 잘못을 부정하려는 회피 수단으로 관념의 감옥을 선택한다.
강박관념은 실제로 회피 수단일 뿐이다.
감옥에 있는 사람은 병역의 의무를 지지 않아도 된다.
감옥은 현실 사회에서 분리되는 곳이다.
관념의 감옥을 짓고 그 속에 있으면 현실의 부담이 없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사연자가 자신을 죄인으로 몰고 가는 죄의식도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남한테 해코지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과 원죄의식이 어설프게 결합된다.
죄를 짓고 그 죄가 발각되지 않았다는 상상을 한다.
자신이 상상한 생각 속에서 죄책감을 느끼느라 실제 현실에 눈을 돌릴 수 없다.
그저 현실을 맞닥뜨리기 두려운 것이다.
관념의 감옥 속에서 현실과 자신을 철저히 분리시킨다.
물론 책임의 무게는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삶의 보람이나 즐거움도 없다.
현실을 마주해야 삶의 참맛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