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스러움
"과제를 해야 한다고 했더니 아버지가 야단을 쳤어요. 혼란스러워요."
우울증세로 고생하는 대학생 새내기의 고민이다.
각자 나름의 사정은 있다.
하지만 우선순위도 있는 법이다.
(3월 23일 참나원 팟캐스트 방송)
사연자는 과제를 해야 한다고 했을 뿐이다.
밤 12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아버지가 "지금까지 뭐 하다 이제 와서 과제를 하냐."라며 화를 내셨다.
혼란스러워진 사연자는 새벽에 자해를 했다.
야단맞는 상황을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선풍기 틀고 바닥을 뜨겁게 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부분은 지적을 받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 쓸모없는 과제라든가 너 바보냐는 식의 말은 심했다.
사연자는 우울증세로 치료를 받고 있으며 독한 피부 약도 먹고 있다.
아마 아버지도 답답하실 것이다.
그렇지만 우선순위라는 것이 있다.
더구나 어른이 되어서 감정대로 하면 곤란하지 않을까.
정신을 차리라고 야단을 치는 것이 효과가 있을까.
정신이 건강하고 관계가 잘 형성되어 있으면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사연과 같은 경우에는 아버지의 행동이 폭력이 될 뿐이다.
결국 사연자가 자해를 하지 않았는가.
우울증 약처럼 정신과 약물은 정신활동을 억제시킨다.
맑고 뚜렷한 정신상태를 유지하기 어렵다.
이런 상태인데 야단을 맞는다면 제대로 소화하기 더욱 어려운 법이다.
사연자의 아버지는 배워서라도 자신을 바꿀 필요가 있겠다.
사연자의 증세도 아버지의 행동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어릴 때는 야단을 맞을 때 영문도 모르고 두려움에 빠졌을 것이다.
두려움 속에서 정신적인 성장이 가능할 수 있을까.
성질대로 하면 안 되는 이유다.
사연자가 혼란스러워 하지만 사실은 억울한 것이다.
억울하고 화나는 단계까지도 아직 사연자는 이르지 못했다.
그저 무언가 불편할 때 자해를 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혼란스러움은 변화의 경계선에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일 수 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하기까지 하다.
사람은 배워야 한다.
적어도 자기 마음은 스스로 알려고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