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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Apr 25. 2021

부모님을 좋아하지 않아요

비관하는 눈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부모님한테 사과받고 싶어요."

자신의 속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사연이다.

머리로는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문제는 마음으로 계속 비관한다는 점이다.

(4월 25일 참나원 팟캐스트 방송)



사연자는 부모님한테 정이 가지 않는다.

심한 학대를 받거나 하지도 않았다.

따뜻한 공감 말고는 물질적인 지원이나 보살핌도 충분히 받았다.

그런데 부모님한테 좋은 마음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목숨이 위협받을 정도로 학대를 받았는데도 부모님을 생각하는 친구들이 신기하다.

부모님도 사람이라 완벽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는 한다.

하지만 적어도 완벽해지려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부모님이 따뜻하게 공감해주지 않은 것을 사과받고 싶다.


깊게 생각해 보면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죽이고 싶다는 상상을 자주 했다.

태어날 때부터 예민한 사람이 있다는데 사연자 자신이 그런 부류가 아닐까 싶다.

왜 부모님을 비관하는 눈으로만 보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사연자의 심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사연은 주변 환경보다 내면의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다.

더 혹독한 환경에서도 긍정 시각을 가지는데 사연자는 부정 시각을 가졌다.

상황을 해석하는 시각에 따라 정서가 긍정이나 부정으로 갈린다.

사연자는 공감에 매달렸다.


어찌 보면 사연자한테 부족했던 것이 부모님의 공감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것은 남부럽지 않게 갖추었으나 따스한 공감의 말을 별로 듣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마음을 알아주는 따스함이 간절하게 그리웠을 수도 있다.

다른 장점들은 공감 부재라는 커다란 아쉬움에 가려져 느껴지지 않으니 불만만 쌓인 것이다.


사연자가 가진 생각 가운데 '완벽하려 노력은 해야 한다.'는 생각을 자신에게 적용하면 어떨까.

머리로 이해한다고 했지만 이미 비관하는 눈으로 보는 상태에서 한계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부모님 세대는 공감이 중요한 화두인 시대가 아니었다.

사연자 자신의 일방적인 의존성을 아프게 통찰하면 어떨까.



무엇이 눈에 들어오는가.

보고 싶은 것을 본다.

관심을 어디에 두는지가 중요하다.

일단 있는 그대로 보려 애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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