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기연 Jan 10. 2019

귀찮음을 이겨내려면

단칼에 끊기

'귀차니즘'이란 말이 사전에 있을까?

매사에 귀찮아하면서 의욕을 갖지 않고 무기력하게 지내는 것을 말하는 신조어이다.

상담실을 찾는 사람 가운데 자신의 자발적인 의지가 아니라 등 떠밀려 오는 사람들한테 흔히 발견된다.

귀차니즘에 빠져 있는 사람은 뭘 해도 효과가 별로다.

귀찮음을 이겨내지 못하면 앞날은 점점 어두워지기 마련이다.

귀차니즘을 들여다보자.



누구나 피로감을 느끼면 귀찮아진다.

귀찮은 느낌은 쉬고 싶은 마음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보통은 조금 쉬어서 피로감이 줄어들면 다시 의욕이 난다.

지쳐고 피곤해서 귀찮다가도 휴식을 가져서 피로를 회복하면 의욕이 나는 것을 탄력성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귀차니즘은 이 탄력성이 사라진 것이다.

쉬어도 쉬어도 마냥 늘어지는 것이다.


요즘 청소년을 둔 학부모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우리 아이는 통 의욕이 없어요." 라며 고충을 토로한다.

반항을 하지는 않지만 자기가 알아서 하는 것이 없이 그냥 시키는 대로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부터 열까지 다 관리를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아이한테 평소보다 강한 압박을 가하면 아이는 심하게 짜증을 부린단다.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게임만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아이를 지켜보며 부모는 속앓이를 한다.


'수동공격성'이란 것이 있다.

공격은 능동이고 수비는 수동인 것이 보통인데, 어울리지 않는 수동성과 공격성이 결합된 말이다.

비아냥이나 조롱, 자책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무언가를 비난한다는 것이다.

비난하는 마음을 적극 드러내지 않고 눈에 띄지 않게 은근히 드러내는 것이 수동공격성이다.

거부나 반항을 적극 하진 않지만 겉으로만 따르는 체하면서 마지못해 함으로써 사실상 상대방을 거부하고 공격하는 방식이다.

귀차니즘에는 수동공격성이 깔려 있을 확률이 높다.


수동공격성은 자기표현을 알맞게 하지 못하고 서툴게 대응하는 행동이 오래 지속되면서 습관이 된 현상이다.

불만이 있어도 그것을 표현하고 요구해서 바로 잡지 못 하고 그냥 마음속으로만 불만을 쌓아둔다.

겉으로는 싫은 내색을 하거나 반대의사를 보이지 않기 때문에 상대방은 그냥 받아들인 줄 착각한다.

동상이몽으로 간격이 생긴 만큼 갈등은 더 깊어진다.

사태가 심각하게 악화되어 되돌릴 수 없을 쯤이 되어서야 문제가 표면으로 떠오른다.

결국 제대로 조치할 수 없어서 무기력해진다.


욕구를 만족하기 위해서 실천하는 행동이 서툴거나 잘못되면 실패를 하게 되고 불만이 쌓인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제대로 된 방법을 찾아서 시도해야 한다.

그런데 제대로 된 방법을 찾지 못해서 실패를 하고 불만이 쌓인 상태를 그대로 두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커진 부담감을 마주하면 너무나 막막해서 쉽게 포기하고 만다.

이것이 귀차니즘의 정체이다.


과연 귀차니즘을 이겨낼 방법은 없을까?
문제를 정확히 알면 바른 해답도 보이기 마련이다.

귀차니즘이 욕구를 만족시키려는 잘못된 방법 때문에 생긴 것이라면 방법을 바꾸어주면 해결된다.

부담감으로 막막한 상태에서 제대로 된 방법을 어떻게 시도할 수 있을까?

놀랍게도 '그냥 하면' 된다.


예를 들어서 생각해 보자.

일상이 힘들고 재미가 없는 생활이 지속되다 보니 아침에 눈을 떠서 일어나기가 싫다.

그런데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온갖 변명과 핑곗거리를 생각하면서 뒹굴거리기 십상이다.

그야말로 귀차니즘의 전형이다.

이때 '그냥 일어나면' 된다.


'하기 싫고, 할 만한 의미도 없고, 의욕도 없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또 해야 하는지 의구심도 들고...'

이렇게 수많은 귀차니즘의 먹이들을 그냥 단갈에 끊어버리는 것이다.

실패하는 사람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수천 가지 이유를 생각한다.

성공하는 사람은 성공할만한 한 가지 이유를 생각한다.

이것이 단칼에 끊기가 효력을 가지는 원리이다.



귀차니즘은 자꾸 머릿속에서 변명거리를 만들어내면서 엄청나게 증식한다.

단칼에 끊어버리지 않으면 조금씩 없애는 동안 더 크게 자라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일일이 그 이유나 핑곗거리에 대응할 필요가 없다.

졸릴 때 찬물을 뒤집어쓰면 정신이 번쩍 하고 것처럼 귀차니즘에는 '단칼에 끊기'가 약이다.

'그냥 해버리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완벽주의는 완벽한 함정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