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의 무서움
"이젠 마음을 비웠어. 어떻게 되든 나하곤 아무 상관이 없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난 너한테 마음을 비웠어."
"마음을 비웠더니 허망해요. 의욕이 없어요."
거짓말들이다.
정말 마음을 비우면 평온해지는 법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를 떠나서 살 수 없는 존재라는 말이다.
그래서 다양한 관계를 맺고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아주 가까운 관계도 있고 먼 관계도 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서로 주고받는 영향력도 크기 마련이다.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가까운 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관계를 좋게 하려 할 것이다.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하는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잘 가꾸려 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큰 고민을 하게 되는 일은 가까운 사이에서 일어난다.
남들한테는 잘하면서 가까운 사람한테는 아무렇게나 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왜 그럴까?
이미 익숙해진 대상한테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는다.
연애 초기에는 모든 관심이 연인에게 집중되지만 익숙한 사이가 되고 나서는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
새로운 자극에 눈길이 가고 마음을 더 쓰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익숙해진 대상은 더 신경을 쓰지 않고도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익숙해지는 것과 흥미를 잃으며 권태를 느끼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을 수도 있다.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 때에는 그 행동을 해서 얻고자 하는 무엇인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동기라고 하는데, 동기가 강력한 만큼 행동을 더 열심히 하게 된다.
음식을 먹는 것은 배고픔을 해결하고 싶기 때문이다.
배가 많이 고플수록 먹고자 하는 동기는 더 커진다.
동기가 생기면 행동을 하고 동기가 사라지면 행동을 멈춘다.
그런데 기대나 욕구가 있는데 현실에선 이루기 어려울 경우가 있다.
이럴 때 갈등이 생긴다.
기대나 욕구가 강력할수록 그것을 이루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갈등도 더 커진다.
내면에 갈등이 있으면 괴롭다.
괴롭지 않으려면 갈등을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해야 한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갖는 마음가짐이다.
이룰 수 없는 욕구나 기대를 가지고 있으면 괴롭기 때문에 버리는 것이다.
바라는 마음을 더 이상 갖지 않게 되는 순간 가지지 못해서 생기는 갈망과 초조감, 불안 따위가 사라진다.
마음을 비우면 욕구나 기대에 묶여 있던 마음이 자유로워지면서 평온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문제는 마음을 비우는 일이 마음대로 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바라는 것이 이루어질 확률이 전혀 없다면 마음을 비우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세상 일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법이라, 아주 작은 확률이라도 기대하게 된다.
복권을 사는 심리를 보면 알 수 있다.
실제로 확률이 지극히 낮아서 이뤄지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때, 계속 기대를 갖고 있으면 괴로운 줄 아니까 '마음을 비웠다.'라고 선언한다.
기대를 덜 할수록 갈등이 덜하기 때문에 스스로도 정말 마음을 비웠다고 자기 암시를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평온해지지 않는다.
평소에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다스리는 연습을 해 두지 않으면 잠재의식에서 일어나는 욕망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마음속에서는 꽉 움켜쥐고 있으면서 실현 가능성이 별로 없음을 아니까 '마음을 비웠다.'라고 자신을 속이는 방식으로 타협을 하지만, 실제로 집착하고 있는 욕망은 그대로이다.
자기도 모르게 마음 깊이 집착하고 있는 욕구나 기대는 생각으로 어찌해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차라리 그대로 인정하고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는 편이 훨씬 낫다.
극단으로 가면 균형을 잃는다.
집착에 빠지는 것도 괴로워지는 일이지만 집착을 다 버려야 한다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욕망에서 자유로워지려면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더라도 '마음을 비웠다.'하고 착각해서 자신과 남을 속이는 것은 어리석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최선을 다해서 이루려 해 보아야 한다.
'바라는 것을 이루려 할 것인가, 욕심을 버려서 자유로워질 것인가' 하는 갈림길에서 거짓에 속지 않게끔 잘 살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