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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May 29. 2021

저희는 삼 남매 가족인데요

둘째의 설움

"언니나 남동생과 달리 둘째인 저만 구박을 받네요."

부모님한테 차별받는다고 느끼는 둘째의 호소다.

독립을 준비하면서 감정을 정리하고자 사연을 올렸다.

둘째의 설움을 풀 방법은 없을까.

(5월 29일 참나원 팟캐스트 방송)



사연자는 둘째라서 서럽다.

부모님은 언니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신다.

남동생한테 쏟는 정성도 대단하다.

그런데 사연자한테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역류성 식도염에 걸렸다.

그런데 그냥 병원에 가보라고 하신다.

그냥 투명인간이 된 것만 같아 씁쓸하다.

사연자의 설움은 피해의식일까 아니면 차별을 받아 생긴 결과일까.


사연자한테 묻고 싶다.

"당신은 부모님한테 어떻게 하고 있나요?"라고.

언니는 부모님한테 분명히 요구한다.

그런데 사연자도 그렇게 하고 있을까.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 사연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사연에서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사연자가 관심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원인과 결과를 거꾸로 보는 경우가 많다.

차별을 받아서 속상하다고 생각한다.

차별이 원인이고 속상함이 결과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속상함을 푸는 것도 차별을 한 사람한테 달려있는 셈이다.


사연자의 시각에서는 자신의 설움을 풀려면 부모님이 차별을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차별을 받는다는 해석이나 판단은 사연자 자신이 하고 있다.

부모님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자신의 행동은 관심 밖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을 외면하고 있는 셈이다.


눈길을 받고 싶은데 행동은 반대로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원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요구하고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알아서 해 주겠지' 하는 기대는 허망하다.

상대의 반응에 앞서는 자신의 행동을 먼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차별을 받았다는 생각이 피해의식인지 현실적인 근거가 있는지 알 수 없다.

자극이 다르면 반응도 당연히 다르기 마련이다.

사연자가 먼저 관계 방식을 바꿀 수는 없을까.

자신이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밖을 보면 자신은 반응하는 입장이 된다.

안을 살피면 자신이 주체가 된다.

안팎을 같이 보아야 치우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내면부터 살펴야 노예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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