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떨어져 눈으로 키우며 탄탄한 심리 자본 물려주기
이 아이의 과제집착력과 목표지향성은 대단하다. 3년 전부터 사슴벌레와 장수풍뎅이로 시작된 곤충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그 깊이와 폭이 점점 넓어져 각종 소동물들로 자신의 마음과 공간을 채워가고 있다. 한 번은 아이와 곤충생태관에 갔다. 나는 아이가 전시관을 돌 동안 매점 테이블에 앉아 책을 보며 쉴 생각이었다. 아이는 생태관에 들어서자마자 설치된 장수풍뎅이 체험 부스에서 한 시간 반을 넘게 붙어있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한두 번 손에 올려본 후 서둘러 다른 전시물로 이동하는데, 이 아이만 홀로 자리를 지키며 여러 부모와 아이들의 손길들이 스쳐가는 틈새를 기다려 체험을 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White Tree Frog를 사기 위해 6시 30분 기상과 집안일을 하고 받는 용돈을 모으고 있다.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일어나서 천 원을 받아 챙긴다.
이 집에 나쁜 곤충은 없다.
나는 4시 29분, 아니 그전부터 일어나 부지런을 떠는 사람이다. 실은 새벽에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아 잠드는 시간이 설렐 정도이다. 내가 이 집을 곤충과 나눠 쓰고 있다는 자각은 주로 이 설레는 새벽에 일어난다. 씻으러 들어가며 신으려는 욕실화 밑에서 애사슴벌레 한 마리가 뒤집혀 버둥거리고 있다. 화장대에 앉아 드라이기 전원 코드를 꽂으려는데, 미세한 소리가 나 뒤돌아보니 넓적사슴벌레가 냉장고 밑을 순회하고 왔는지, 온몸에 먼지를 실타래처럼 휘감고 내 발 쪽으로 기어 오고 있다. 이 친구는 내가 올 여름 산책하던 학교에서 발견하고 데려왔는데, 야생이라 그런지 모험심과 도전의식이 대단하다. 산에서 캠퍼스 도로까지 내려온 것이 우연은 아닌가 보다. 청소기 헤드로 인테리어 몰딩을 쳐 깨진 곳에 구멍이 났다. 새벽녘에 책을 읽노라면 그 안에서 서걱서걱 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거기에 또 다른 진취적인 친구가 들어가 작업 중인 것 같다. 하루는 아이가 자기 전에 장수풍뎅이가 갇혀 있는 것이 불쌍하다고 뚜껑을 열어주겠단다. 우려대로 새벽 내내 풍뎅이가 거실 천정과 바닥을 퍼덕이며 날아다녔다. 한 번은 출근 후 가방에서 필통을 꺼냈는데, 밀웜 한 마리가 붙어서 왔다. 대전에서 전주까지 먼 곳으로도 왔구나. 얼마 전 사마귀 알 수 백개가 한꺼번에 부화했다. 가녀린 몸의 아기 사마귀 한 마리는 귀엽다. 수 백마리가 함께 있으면... 지금은 애사슴벌레 한쌍을 교미시켜 산란하게 하려고 전기장판에 불을 넣고 수건을 덮어 온도를 맞추고 있다. 여름으로 착각하면 교미를 한단다.
작은 곤충들이 제 집을 탈출해서 돌아다닐 때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아이 이름을 부르고, 두근거리는 심장을 느낀다. 이러한 나의 반응이 아이가 곤충을 공부하고 사랑하는 열정을 사그라들게 할까 봐 매우 조심스럽다. 아이가 소심하기 때문이다. 올해 곤충학자가 쓴 책 <세상에 나쁜 곤충은 없다>와 곤충학자 류비셰프에 관한 책을 재밌게 읽긴 했다. 나는 딱 거기까지다. 그 이상은 어렵다. 그렇다면 나는 부모로서 이 아이의 흥미와 열정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나 고민된다.
심리적 안정감 물려주기
인간이 높은 목표를 세울 수 있는 것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안전하다고 느낄 때이다. 실패해도 별로 안 다친다는 생각이 들 때 도전하게 된다. 12세 프랑스 소년 톰 고른(Tom Goron)은 2018년 110Km에 달하는 영국 해협을 요트로 혼자서 횡단했다. 물론 오랜 기간의 훈련이 있었다. 아이는 뱃멀미로 열 번 이상을 토하면서도, 14시간 21분의 최고 기록을 수립하였다. 아이가 높은 목표를 성취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 뒤에서 아버지가 더 큰 요트를 타고 300미터 이상의 거리를 유지하며 뒤를 따랐기 때문이다. 톰의 도전은 아빠가 마련한 심리적 안전지대 속에서 가능했다. 이 사례는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 중 하나가 큰 목표를 상상하고 그것에 도전하게 하는 심리자본임을 보여준다*. 심리자본 상속은 어린 시절에만 가능하므로 때를 놓치면 안 된다.
최소한만 가르치고 기다려 주기
1999년 영국 뉴캐슬 대학 수가타 미트라 교수는 인도 빈민가 벽에 구멍을 뚫고 초고속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의 모니터와 키오스크를 설치하고 아이들이 스스로 인터넷을 찾아 어떻게 학습하는지를 관찰하는 "Hole in the Wall Project"를 시작하였다. 미트라 교수는 인터넷, 컴퓨터, 영어를 접해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 단 8시간 만에 서로를 가르치는 것을 발견했다. 유사한 실험은 계속되었고, 아이들은 가르치는 사람이 없어도 DNA 유전자의 부정확한 복제가 유전병을 일으키는 것을 알아냈다. 이젠 영국의 자원봉사 할머니들을 스카이프로 연결하여 아이들에게 '정말 놀라운데~ 고생했구나', '저건 뭐야, 다시 한번 더 해 볼래?', '이것은 영어로 이렇게 검색하는 거야..'와 같이 아이가 배우는 과정과 도전을 칭찬하게 하였다. 이러한 실험은 16년간 지속되었고 결국 교사의 최소한의 개입(의료분야에서 minimally invasive surgery는 복강경 등으로 환자 몸에 상처를 최소화하는 최소침습수술을 말함)*과 할머니의 칭찬과 같은 정서적 지지만 있으면 아이가 학습주제에 대한 교육과정을 스스로 구성해 나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학습을 자기구조화학습(Self-Organized Learning)이라고 하였다. 놀라운 사실은 전문 지식이 있는 교사에게 배운 아이는 시험이 끝난 후에 학습도 끝냈지만, 자기구조화학습을 한 학생은 시험 종료 3개월 후에 더 높은 성취를 보였다***. 부모와 교사가 아동의 자율성을 지지할수록 아동의 의사결정참여 수준이 높은데, 이때 교사의 자율성 지지가 더 강한 영향을 미친다****.
물리적 거리두기 AND 심리적 거리 좁히기
주말에 아이와 뒷산을 올랐다. 아이는 자꾸만 등산로를 이탈하여 혹시나 나무 밑동에 애벌레가 없는지 확인해 본다. 50분이면 다녀올 곳을 2시간이 넘게 걸렸다. 나도 모르게 빨리 가자는 재촉의 말이 턱밑까지 차오르지만, 참으며 아이와 물리적 거리를 유지한다. 산이니까, 7살이니까, 300미터는 안 되겠고, 30미터 이내로. 그리고 함부로 돕지 않는다. '도와줄까?'라는 말도 줄여야겠다. 이 말도 자꾸 개입하고 싶어서 하는 말이다. 아이에게 가까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눈은 아이를 계속 바라보고,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상담을 전공한 교수님으로부터 '아이의 눈을 바라보되 소리내지 말고 웃어주는 게 최고의 양육'이라고 배웠다. 곧 오십이 되시는 아름다운 이 분은 아직 싱글이시다. 내가 생각해도 이 방법이 아이를 심리적으로 지지하는 가장 손쉽고 위대한 방법이다. 그리고 집에선 특별한 일이 없어도 자주, 꼭 안아준다. 특히 잘한 일이나 잘못한 일이 없을 때 안아준다. 부모의 사랑이 보상으로 생각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내 옆에서 나란히 걷지 않는다.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아침이라 산에 어르신들이 많다. 혼자 뛰어다니는 아이에게 몇 분의 어르신들이 자꾸 "너 혼자 왔니?" 물으신다. 수줍은 아이는 대답을 못하고, 멀찍이 있는 엄마를 손으로 가리킨다.
아이가 실수해도 자기 마음은 안 다친다는 것을 느끼게 해야 한다. 소심한 아이는 '엄마, ~~ 해도 돼요?'를 자주 묻는다. 나는 아주 명료하고 단호하게 '돼요' 또는 '니 맘대로'라고 한다. 아이의 자율성을 지지하면서 의사결정참여 수준을 높이기 위함이다. 그리고 왜 되는지를 설명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것을 설명하는 순간 아이는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는 것을 자신의 내면이 아닌 주변 환경의 조건으로 판단하게 된다. 될 만한 것을 하는 것은 도전이 아니다. 곤충에 대한 교육과정에서는 손을 떼고자 한다. 책을 주문해주거나, 퀄리티 높은 Youtube 채널을 보며 연구노트를 작성하게 하는 정도다. 곤충에 흥미를 잃더라도 괜찮다. 어린 시절 3년 이상 한 가지에 몰두하고 연구한 경험은 그 자체로 엄청난 지적 자산이다.
아이의 신성(神聖)을 끌어내려면
교육이란 아이의 내면에 숨겨진 좋은 것들을 찾아내어 세상 밖으로 끌어내는 작업이다. 즉 창발적 현상이 나타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창조주는 모든 인간을 자신의 이미지를 닮게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인간이 신은 아니지만 신성을 가지고 있다. 아이에게서 발현되는 신성은 어른의 그것보다 더 경이롭다. 그래서 아이에게 함부로 메스를 대면 안된다. 아이가 자신의 신성을 스스로 끌어내는 습관을 가지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부모는 7세에는 30미터, 12세에는 300미터, 17세에는 3킬로미터, 그 후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이와 거리두기를 하며 게을러 보이는 양육을 해야 한다. 하지만 최소침습수술이 의사의 정교한 조작을 필요로 하듯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세밀하고 부지런한 양육을 해야 한다. 아이를 면밀하게 관찰하고, 분석하고, 조용히 만져주고, 안아주고, 눈을 맞추어야 한다. 안에 있는 것을 꺼내다 실패해도 마음을 크게 다치지 않을 것이라는 안정감을 주어야 한다. 이것이 부모가 아이에게 물려줄 심리적 자본이다.
아직도 소매를 다 젖히며 손을 씻지만, 아이는 종종 존재 자체로 부모에게 영적 각성을 준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 효도를 다 하고 떠난다고 하는가 보다. 어느 날부터 새벽 4시, 5시, 6시가 되어도 몰딩 구멍 속 작업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두 달간 설레는 새벽시간을 같이 보내던 기개 넘치던 친구가 떠나고 나니, 새벽에 커피 내릴 물을 끓이며 잠깐씩 어떤 소회에 젖는다.
* Mártin, D. (2019). Habitus: Sind Sie bereit für den Sprung nach ganz oben? 배명자 역(2020). 아비스투 - 인간의 품격을 결정하는 7가지 자본. 파주: 다산북스.
** 교육분야에서 maximally invasive education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풍토 좀 바뀌면 좋겠다. 의사 선생님들처럼 좀 세련되자. 어차피 한 인간에 대한 평가는 마흔이 넘어야 가능하다. 느긋하고 우아해지자.
*** Mitra, S., & Rana, V. (2001). Children and the Internet: Experiments with minimally invasive education in India. The British Journal of Educational Technology, 32(2), 221-231.
**** 채은영(2017). 아동의 의사결정 참여에 부모와 교사의 자율성 지지가 미치는 영향: 아동의 기본심리욕구의 매개효과를 중심으로.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