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직장이 사라지고 있다

평생직장이 사라짐_197회

by 광풍제월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있다

2025.12.12. 목(D-19)


퇴직을 앞두고 마음속에 작은 빚처럼 남아 있던 일이 있었다. 함께 일하며 나를 도와준 동료들에게 제대로 인사를 하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나버렸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 마음을 갚는 자리였다. 6시 20분,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을 나서 청량리의 조개구이집으로 향했다. 초겨울 바람이 매서워 걸음은 자연스레 빨라졌다.


가게에 도착하니 운 좋게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지난번에는 대기줄이 길어 발길을 돌린 기억이 있어, 오늘만큼은 꼭 자리를 잡고 싶었다. 먼저 석화찜을 주문하고, 술은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미뤄두었다. 차례로 들어오는 얼굴들을 보니 반가움이 먼저 올라왔다. 함께 근무했던 이실장과 김선임, 그리고 공로연수 전 여러모로 도움을 줬던 김팀장까지, 예전 팀이 다시 모인 듯한 느낌이었다.


“4개월 만이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얼굴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실장과 팀장이 12월 초부터 육아휴직에 들어가 회사 업무가 많이 빠듯해졌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서로의 고생을 알기에, 짧은 한숨 속에도 동료애가 묻어났다.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공기관의 변화가 화제로 넘어갔다. 특히 두 동료가 지난 8월 우주항공청의 임기제 경력경쟁채용에 함께 지원했던 이야기는 묘하게 마음에 남았다. 박물관에서 팀장으로 근무하던 사람이 유네스코 파견이 무산돼 사직했는데, 이후 우주항공청으로 옮겼다가 다시 퇴직했다고 한다.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 새로 공고가 나자 두 동료가 동시에 지원한 것이다.


같은 부서에서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다른 기관의 같은 자리에서 다시 경쟁하고, 또 다른 길에서 다시 만나는 일. 예전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웠던 장면이 이제는 자연스러운 흐름이 되어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확실히 느꼈다.
이제는 공공기관도 더 이상 ‘평생직장’이 아니다.
언제든 이동하고, 언제든 떠날 수 있고, 언제든 다른 장소에서 다시 마주칠 수 있다. 세상이 좁아져서가 아니라 구조가 그렇게 바뀌고 있었다.


2차로 가까운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끼리만 유지하던 오래된 루틴이 있었다. 첫 500cc는 말없이 원샷하는 것. 오늘도 예외는 없었다. 단 한 명만 한꺼번에 마시지 못해 벌칙처럼 잔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고 들고 있어야 했다. 이런 사소한 장난과 웃음 속에서 함께 보낸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새삼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바람은 더욱 차가워져 있었다.
그런데 헤어질 때 잠시 잡은 동료들의 손은 이상하리만큼 따뜻했다.
오래 같은 자리에 있을 것만 같았던 사람들이 각자의 길로 흩어져 가는 시대.

그 변화의 한복판에서, 나는 오늘 고마움에 답례를 했고, 마음 한쪽에 남아 있던 숙제를 끝낸 기분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시대에도, 평생 동료는 남는다는 사실을.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한강을 읽는다’ 문학평론가 허희의 강연을 듣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