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의 시간_198회
『겨울나무의 시간』 손종례 지음 · 목수책방 · 2022
손종례 저자를 처음 만난 것은 2023년 12월, 목수책방이 주관한 『겨울나무의 시간』 ‘저자와의 특강’ 자리였다. 그 무렵 나는 한국숲해설가협회 제10기 겨울숲바라보기 알자반에 새내기로 참여하고 있었다. 그날 처음 들은 ‘산결’이라는 단어는 겨울숲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단숨에 바꾸어 놓았다. 겨울나무에 대해 막연한 관심만 품고 있던 나는, 그날을 계기로 비로소 겨울나무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이듬해 1월, 협회 나눔 강좌 「겨울나무의 시간」 줌 강의에서 저자를 다시 만났다. 그 자리에서는 겨울눈을 중심으로 배움을 복기했다. 이번 달 책수풀 선정 도서로 이 책을 다시 펼치며, 겨울숲바라보기에서 때 동정한 나무들이 가끔 생각나서 혼자서 빙그레 웃기도 했다.
이 책은 저자가 직접 촬영한 700여 장의 사진과 함께, ‘첫 번째 시간 겨울숲, 숨은 아름다움을 찾아서’부터 ‘일곱 번째 시간 겨울눈, 바람과 만나 봄이 되다’까지로 구성되어 있다. 겨울나무의 기본 이론부터 78종 나무의 겨울눈 형태, 잎눈과 꽃눈이 피어나는 과정까지를 사진과 함께 차분히 따라간다. 설명은 마치 숲길을 함께 걸으며 옆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건네는 듯하다. 겨울 산행의 태도와 겨울눈을 대하는 예절까지 담아낸 대목에서는 저자가 겨울숲을 얼마나 깊이 사랑하고 존중하는지가 분명히 드러난다.
겨울이 되면 산에 비밀스럽게 나타나는 굵은 선이 있다. 오로지 겨울 산과 겨울나무만 만들어 낼 수 있는 선이다. 문득 쳐다본 산등성이에 슬그머니 이 선들이 나타나면 겨울이 우리 곁에 나가와 있음을 실감한다. 나무는 겨울이 되면 모든 것을 떨구고 산을 지킨다. 이런 겨울나무들이 모여 선을 그려 내고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산결」중에서, 17~18쪽)
저자는 겨울이 오면 산에 오르거나 들판을 걸을 때, 잠시 산 능선을 바라보라고 말한다. 나 역시 겨울숲바라보기 답사 중 상원사에서 바라본 산결을 잊지 못한다. 눈 덮인 능선이 겹치고 흩어지며 만들어내는 농담은, 말로 옮기기보다 몸으로 먼저 받아들이게 되는 풍경이었다. 그날 이후 겨울이 오면 나는 산결을 찾는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괜히 주변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싶어 안달한다.
겨울나무라 하면 흔히 바람에 흔들리는 앙상한 가지부터 떠올린다. 그러나 저자는 겨울나무를 보며 오히려 “걱정할 것 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고 했다. 나무는 겨울을 대비해 양분을 저장하고, 낙엽을 떨구며 불필요한 것을 내려놓는다. 수분을 줄이고, 탄수화물·지방·단백질의 농도를 높여 어는점을 낮춘다. 겨울나무는 멈춘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로 쉬고 있다. 그 치밀한 생존 전략 앞에서, 겨울숲은 결코 쓸쓸한 공간이 아니다.
저자는 또 굵고 곧게 자란 나무들 사이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가지들이 만들어낸 ‘하늘길’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 하늘길은 옆 나무와 너무 가까워 불편하지도, 너무 멀어 관계가 끊어지지도 않는 거리다. 서로를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살아가는 간격. 나는 이 하늘길이 인간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느낀다. 양보와 배려, 존중이 균형을 이룰 때 관계는 오래 간다.
이 책과 나의 관계도 그러했으면 한다. 손을 내밀면 닿을 수 있는 거리.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채로 겨울마다 다시 펼치게 되는 책으로.